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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운 Nov 12. 2024

다시 쓰는 이야기 #2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여성들은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으며 때로는 남성들조차 오르지 못한 높은 곳에 당당히 올라서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산문, 심지어는 시와 희곡을 쓰는 것도 이제는 어떠한 장애물의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성'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떠한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그녀는 가족들보다 한 시간 혹은 그 이상 일찍 눈을 뜹니다. 아마도 전날 미처 치우지 못한 그릇더미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겠지요. 그릇들이 씻겨나가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잡다한 것들에 다소 방해받곤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 뉴스를 틀어두고 세상이 흘러가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은 그녀의 중요한 아침 일과입니다. 스토킹을 당하다가 살해당한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그 여성은 한 남자의 소중한 아내였으며, 두 아이의 엄마이자, 부모님에게는 극진한 효녀였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집니다.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길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듯이 그녀에게도 고된 일과입니다. 어쩌면 일하는 시간보다도 그 시간이 더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출근을 마쳤습니다. 다소 성격이 급한, 게다가 참을성이 없는 어떤 남성에게서 욕지거리를 듣는 일이 없이 출근을 마쳤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의 일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숱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그녀의 곁을 떠나는 사이 그녀는 일찍이 예상했던 것보다 꽤 오랜 시간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원하던 곳에 자리를 잡아 일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8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적지 않게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고 마음 한 편에 자리한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합니다. 같은 시기 입사한 남성 동료들은 이미 모두 자신보다 높은 직위를 맡게 되었지만 이는 결코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그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숱한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그녀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녀를 기다리는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때 조금 멀지 않은 듯한 뒤쪽에서 들리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경종을 울립니다. 다소 어두운 주차장에 그녀와 정체 모를 이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그녀는 다소 불편합니다. 평소보다 조금은 빠르게,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걸음을 서두릅니다. 홀로 엘리베이터에 타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21세기에 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이 있으며, 연간 500파운드에 상당하는 금액 이상을 벌고 있고, 자신만의 재산이 있으며 투표권도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일들은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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