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니까, 도살 예정 시각을 알고 있는 가축처럼 굴었다. 지금이 몇 시지? 네 시? 그럼 두 시간 뒤면 개장수가 날 죽이기 위해 데려가려 올 거야. 내 자유는 두 시간 뒤면 사라져. 여섯 시가 되면 개장수가 정말 온다. 그건 바로 나다. 그러므로 개장수가 개를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뒷번호의 개장수에게 그 일을 미루고 사라질 뿐이다. 나의 목숨은 몇 시간 연장된다. 열 시간 뒤면 내일 아침이 오겠네. 그리고 9시간, 8시간, 죽음이 오기까지 7시간, …. 그러니까 도살이 예정된 식용견인 채로, 그것도 그날 도살이 될 개인 채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을 부지했다가 다시 두려움에 잠식되는, 그런 삶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무거운 칼처럼 나를 매 순간 옥죄었다. 칼을 차고 있는 나는 곧 죽음을 맞이할 사형수였고 대죄인이었다. 무슨 죄인지 누구에게 해를 입혔는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런 사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나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해악을 의미한다고.
죽는 것이 이로운 목숨이었으나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나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나에게도 너무나 어렵고 끈질겼으므로 살아남은 목숨 대신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이로운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혹은 앞으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설득하거나.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이미 진즉에 없는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나는 죽었다. 아니 태어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