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한강

다시 쓰는 이야기 #5

by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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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고독



인간이 신의 자리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에

분노한 신은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들의 말을 갈라 놓았다

그것은 동시에 형벌이었다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므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간은 다른 말로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가 태초의 그것과 닮아갈수록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너무 오랫동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한 번 각도가 틀어진 선들은 계속해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득하게 지나간 시간만큼 벌어진 거리를 사이에 두고

인간은 타고나길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가진 공통의 질병

누구나 예외 없이 가졌다면 그것은 질병일까


이윽고 인간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태초의 그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서만 길어지고

제각기 다른 색의 호흡은 섞이지 못한 채 공기 중을 방황하고

똑같은 미소 똑같은 웃음

그 뒤에 숨은 천 개의 다른 의미는 결코

같아질 수 없었다


드물게 이 사실을 알아챈 이들만이

탑 꼭대기에 마침내 올라섰으나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의

거대한 슬픔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이는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 몸을 던졌다

추락의 종착점 그것은 어쩌면 깊은 심연

계속해서 추락하는 그의 손끝에 닿은 차가운 손가락

서로의 냉기를 느끼며 추락하는 사람들

추락하는 동안 그들은 깨달았다

우리는 함께 추락하고 있다고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손을 뻗기로 했다

언제나 각자의 배타적 고독 속에 있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소용없을지도 모르는 그 몸부림

언젠가는 서로가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부질 없으나 확실한 희망의 몸짓


모두가 영원한 고립 속에 있을 것이다

결코 해소될 수 없는 본래적 고독

그러나 우리는 같은 고독을 공유하고 같은 고뇌를 나눌 것임을

부질 없는 희망으로 손을 잡고 그렇게

결국 함께 견뎌낼 것임을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알았다

그래서 말한다 오늘도

우리 함께 고독하면 괜찮을 거라고

우리의 손이 맞닿은 채로

그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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