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
초록 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실시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223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아동행복지수 조사에서 응답자의 86.9%가 행복지수 '하'로 나타났다. 또한 통계청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 조사 결과 수치는 6.6으로 이는 OECD 주요 국가 평균 7.6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권 결과라고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이번파트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아이들 사이의 빈부격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자기 별명이 '기생수'인 이유를 알게 된 중2 소년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는 몇 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에 관한 기사인데, 해당 사연의 주인공인 A 씨는 중학교 2학년시절 같은 학급 아이들이 자신을 '기생수'라고 부르던 것이 알고 보니 '기초생활수급자'의 줄임말인걸 알고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의 내용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해당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고 어떤 댓글에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휴거', '빌거'라는 신조어도 나왔다면서 이는 '휴먼시아(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 '빌라에 사는 거지'를 줄인 말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실제로 아이들 사이에선 휴거와 빌거를 비롯해 '주거(주공 아파트에 사는 거지)', '전거(전세에 사는 거지)', '엘사(LH아파트에 사는 거지)'라는 혐오 표현을 유행처럼 사용 중이라고 한다. 이 기사를 읽은 나는 자기 또래 친구의 집안형편을 가지고 가난을 낙인찍는 요즘 아이들의 행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개근거지'라는 단어의 뜻을 알았을 때도 기함했다. 과거에 내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졸업식날 받는 개근상은 학교를 한 번도 빠지거나 조퇴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받게 되는 성실함의 증표였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면 여행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개근거지'라고 놀림을 당한다는 거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개근거지'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걸 알게 된 부모들은 자녀가 놀림받을 것을 우려해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 일정을 잡고 비행기표를 예매한다고 한다. 이제는 학교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면 성실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가난하다는 놀림을 받는 세상이 된 것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기생수, 개근거지, 엘사. 이러한 혐오표현이 줄줄이 생성되면서 청소년 사이의 빈부격차는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SNS 유행까지 번지면서 청소년들은 나와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기 시작했다. SNS가 없을 시절에는 가까운 친구들이 비교대상이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해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아이들과 내 처지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행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청소년들은 나보다 잘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기, 질투,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덕분에 개개인의 행복지수는 낮아지는 것이다.
앞에 설명했듯이 현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타인의 과시에서 비롯된 질투, 결핍, 조롱, 혐오, 열등감이 만연하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행복지수는 끝도 없이 낮아지고 삶의 만족도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가난혐오,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타인의 과시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 어른들조차도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삶을 불우하게 생각하기 마련인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겐 빈부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이를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에게 혐오단어를 들으며 놀림받고, 평범한 아이들은 잘 사는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고, 잘 사는 아이들은 나보다 더 잘 사는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고. 아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끝이 없고 어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필자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만연한 과시문화가 아이들한테까지 내려와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가난을 낙인찍고 부를 과시하는 어른들부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라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