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독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경제적인 여유의 부족으로 부모와 한 집에 사는 청년을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캥거루족이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에 독립을 했지만 가까운 지인들을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여전히 함께 사는 캥거루족 지인들이 꽤 많은 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청년이 42만 8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20대가 26만 9천 명, 30대가 15만 9천 명이나 된다. 해가 지날수록 증가하는 캥거루족은 대한민국의 큰 사회문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부모님 세대땐 웬만하면 20대에 결혼을 했고, 30대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드물 지경이었다. 그런데 부모님께 얹혀살며 쉬는 청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결혼할 형편이 되지 않는 청년이 그만큼이나 많음을 뜻한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많은데 캥거루족이 40만 명이나 된다니. 이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한 명씩만 낳는다 해도 신생아 수가 20만 명은 증가할 텐데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서른 살인 필자는 친구들이랑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들을 한다. 정신연령은 아직도 20대 초반에 머물러있는데 우리가 서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부모님 세대땐 우리 나이면 이미 애가 둘셋씩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고. 어렸을 땐 서른 살 어른들을 보면 그렇게 커 보이고 어른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 나이가 되어보니 내가 거대하게 봤던 그들 또한 지금의 나처럼 어리숙하고 미성숙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둘셋씩 낳아 키운 책임감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
과거엔 가정형편이 어떻든 사회가 어떻든 너도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가 변화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경쟁을 끊임없이 시키는 사회를 살아가며 여러 실패를 겪어본 청년들은 누군가를 책임지는 위치가 아닌 책임을 당하는 위치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것이 불안정한 상태로 가정을 이뤄서 아이를 낳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삶이 편하고 행복하다는 걸 느끼는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혼인율은 감소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출생률 감소로 이어진다.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는 기성세대의 설득은 타인을 책임지기 꺼려하는 청년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일뿐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라는 말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이 행복했다면 그 행복을 물려주고자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질 텐데 자신의 삶이 불행했다고 느끼는 청년들은 그 불행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출생률이 증가하려면 현재 살고 있는 청년들이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이 과연 살기에 행복한 나라일까?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아이들도, 청년들도, 중년들도, 노년들도 입모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나라에서 출생률 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청년들은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다. 삶이 불안정한 이들에게 무작정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형체 없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출생률 늘리기에 급급할 때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청년들이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삶이 행복한 사람은 이 행복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낳으려고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