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뭔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 오자마자 조용히 공부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학교 이야기부터 끊임없이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방은 가끔 수다방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떠들고 소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끔 각자의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여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크게 들릴 때가 있다.
이렇게 간만에 찾아온 면학 분위기를 요란하게 깨는 목소리가 있다.
“쌤, 누가 껌 씹어요”
나는 조용한 상황을 좀 더 유지하고 싶어 짐짓 못 들은 척한다. 하지만 내가 듣지 않는다고 나머지 학생들도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마치 꿈속에서 공부하다 깨어난 듯 껌 씹는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들리지도 않았던 껌 씹는 소리를 그때까지 참고 있었다는 듯, 이제는 더 이상 껌 씹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며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하면서 공부방은 다시 시끌시끌해진다.
“누구냐?”
“누가 껌 씹냐?”
“너지?”
“나? 아닌데?”
“얘가 껌 씹어요”
“자자, 껌 씹던 사람은 껌을 휴지에 싸서 버리고 공부하자.”
껌을 씹던 학생이 조용히 말한다.
“방금 삼켰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학생들은 껌 씹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껌을 씹는다고 얘기한 그 학생만 자신의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는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껌 씹는 소리만 듣고 있니?”라고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날따라 그 아이에게 껌 씹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것은 ‘간절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간절히 하기 싫은 공부’를 간신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온갖 소리에 민감하다. 그러니 껌 씹는 소리뿐만 아니라 공부방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에도 쉽게 점령당한다.
“쌤, 택배 왔어요.”
“밖에 누가 왔어요.”
“누가 노래 불러요.”
심지어는 공부방 위치가 10층 이상의 고층인데도 1층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학생의 목소리를 구별하여 듣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은 커다란 귀 두 개와 함께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 것처럼 청각이 활짝 열려 있다.
아이들의 청각이 이렇게 열려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게임을 할 때는 옆에서 뭐라 해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 방 안에서 억지로 공부하고 있을 때 “나와서, 밥 먹어라.”라는 엄마의 목소리는 그 아이에게는 하기 싫은 공부를 잠시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원의 소리이다. 또한 밖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 동생의 떠드는 소리는 공부에 방해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공부를 방해해 주기를 바라는, 그 소리 때문에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음을 합리화할 수 있는 소리이기에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듣고 싶었던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할 때 누군가 자신의 공부를 방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자신은 공부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단지 외부 소리에 의해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복합적인 마음의 상태가 섞여 있다.
그러니 듣고 싶은 소리는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 데서나 귀를 비집고 들어오는 진부한 배경 음악에 염증을 내지만 뇌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배경 음악을 만들어 낸다. 사무실의 소음, 차량의 소음, 히터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사람들로 꽉 찬 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등, 우리는 낯익은 소리의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밤에 혼자 있으면 낯익은 소리는 강도처럼 달려든다.” - 감각의 박물관, 다이앤 애커먼
아이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들리지 않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가 있고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실제로 소리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소리를 인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마음 상태에 따라 일상의 소리를 다르게 지각한다.
나 역시 빈집에 혼자 있을 때나 한밤중 잠에서 깼을 때 갑작스런 소리에 둘러싸일 때가 있다.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아파트 두꺼운 유리를 뚫고 들려오는 바깥 차량 소리와 한여름 모기의 날갯짓 소리 등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일상의 소리가 소음으로 돌변한다. 그때부터는 소리가 생각을 지배한다.
그러니 공부방에서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상의 소리가 소음이 되지 않도록 적당한 소리로 공간을 골고루 채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글 읽는 소리를 시끄럽다고 하지는 않는다. 각자 다른 학생의 글 읽는 소리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읽기에 집중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는 자연스럽게 백색소음 역할을 한다. 매일 어린이용 신문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야 하고 국어나 사회 및 과학 공부를 할 때는 문제를 풀기 전에 해당 교과 내용을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학생들 각자의 글 읽는 소리가 모여 공간을 골고루 채우면 그제야 일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소리 내어 글 읽기는 일석이조, 일거양득, 도랑치고 가재 잡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