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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Sep 23. 2022

마시멜로와 말랑카우

공부방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사탕을 골라 먹을 수 있다.  매일 읽는 신문 기사나 공부하던 교재에서 오타를 찾는 경우 오타 하나에 사탕 하나, 일주일 동안 읽은 신문 기사와 관련된 금요 퀴즈에서 정답 하나에 사탕 하나, 퀴즈 시간에 문제를 소리 내서 읽는 경우 사탕 5개를 준다. 문제를 읽어 주는 것은 원래 내가 하던 역할인데 금요일 매 시간마다 퀴즈 10문제를 3번씩 읽어 주면 목이 잠겨 주말 내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문제를 일반 시험지처럼 인쇄하여 주면, 듣기 훈련이 안되기 때문에 3번씩 읽어주는 문제를 집중해서 듣고 답을 써야 한다. 한 학생의 아이디어로 학생들이 순서를 정하거나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대신 문제를 읽게 되었다. 사탕을 5개씩이나 주니 너도나도 읽겠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퀴즈는 신문 기사에 나오는 내용으로 대부분 제목만 주의 깊게 읽어도 총 열 문제 중 서너 문제는 쓸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건성으로 읽으면 한 문제도 못 맞히는 참사가 일어난다. 아이들마다 많게는 예닐곱 문제에서 적게는 한 두 문제라도 맞혀서 사탕을 정답 수만큼 가져가는데 한 문제도 못 맞히는 경우는 사탕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원칙을 정해야 아이들은 사탕을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신문을 정성껏 읽고 오타도 찾고 숙제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효과도 상당히 있어서 아이들의 문해력이 놀랄 만큼 향상되기도 했다.      


사탕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청포도맛 사탕, 마이쭈, 젤리, 말랑카우 등 여러 종류를 섞어 큰 통에 담아 두어 원하는 사탕을 골라 갈 수 있다.    

  

이 날도 한 주간 읽은 신문기사를 열심히 읽었는지 확인하는 퀴즈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여러 사탕 중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말랑카우가 많이 섞여 있었던 날이었다. 다들 한 두 문제 이상씩 정답을 맞혀서 사탕을 받았는데 신문을 열심히 읽지 않았던 4학년 찬솔이가 한 문제도 맞히지 못해 사탕을 전혀 가져가지 못했다.

퀴즈 시간이 끝나고 각자 해야 할 공부를 할 때 찬솔이는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과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교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와 관련된 교과 내용을 큰소리로 읽어야 한다. 역시나 큰소리로 글 읽기를 싫어하는 찬솔이가 교재 내용을 읽지 않고 문제만 풀고 있다.     

“찬솔아, 교재를 읽지 않고 문제를 푸는구나. 먼저 큰소리로 다 읽은 후에 문제를 풀자”

가뜩이나 퀴즈를 한 문제도 못 맞혀서 기분이 좋지 않아 대답도 마지못해 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교재를 읽기 시작한다.


“화산 분출 모형실험하기,... 휴!... 준비물... 알루미늄 포일, 말랑카우 여러 개, 알코올램프, 은박 접시, 식용색소 점화기. 먼저 말랑카우를 이용해 화산 분출 모형실험을 합니다. 후!...”


중간중간 찬솔이의 한숨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먼저 알루미늄 포일 위에 말랑카우를 넣고 식용 색소를 뿌립니다. 알루미늄 포일로 말랑카우를 감싼 뒤 윗부분을 조금 열어 둡니다. 후!, 윗부분을 조금 열어두어야 말랑카우가 쉽게 분출할 수 있습니다. 말랑카우를 감싼 알루미늄 포일을... 휴우 ”     


다른 학생들 질문에 설명을 하면서 중간중간 찬솔이의 읽는 소리를 듣자 하니 뭔가가 이상했다. ‘뭐지?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듣고 나서야 찬솔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시멜로를 말랑카우로 다 바꿔서 읽은 사실을 알아챘다. 나 역시 첫소리가 비슷하여 하마터면 틀리게 읽은 부분을 찾아내지 못할 뻔했다.      


“찬솔아, 마시멜로를 말랑카우로 바꿔 읽었구나. 준비물은 말랑카우가 아니라 마시멜로란다.”

“아, 맞다. 말랑카우, 아니 마시멜 로지...”

끝까지 헛갈리는 찬솔이의 머릿속에는 먹지도 못한 말랑카우로 가득 찬 듯했다. 다행히 그다음 주에는 신문도 성실하게 읽고 퀴즈 정답도 맞혀서 말랑카우를 여러 개 받아갈 수 있었다.      


사탕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1시부터 6~7시까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 보면 이를 땐 서너 시, 늦을 땐 네 다섯 시쯤 되면 당이 떨어져 손발이 떨리고 힘이 들 때가 있다. 이때는 참지 말고 바로 사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늘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티 나지 않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스럽게 먹으려 해도 결국 한마디 듣고 만다.      

“어, 선생님은 왜 먹어요?”

“으응... 선생님이 바빠서 점심을 못 먹었거든.”이라고 얼버무리게 된다.

이때 “점심을 먹었는데 당이 떨어져서 그래.”라는 식의 설명을 늘어놓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너도나도 당이 떨어졌다며 소란스러워진다. 사실, 내가 준비한 사탕을 나도 먹겠다는데 어쩌다 먹을 때마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면 먹던 사탕이 목에서 콱 막히는 것 같다. 애들 앞에서는 숭늉도 못 마신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닌 게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표어가 있다. 사탕에 대한 아이들의 집념을 비슷한 방식의 표어로 표현하면 ‘더 많이 더더 많이 더더더 많이’라는 표어가 되지 않나 싶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사탕의 달콤함에서 벗어나지만 10세 전후까지의 아이들은 사탕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탕의 달콤함, 즉 단맛에 집착한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은 아이들이 어른보다 단맛을 느끼는 미각이 더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단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 설탕에 민감한 혀끝이 오랜 세월 갖가지 진미를 맛보는 과정에서, 혹은 뜨거운 수프를 식히지 않고 마시다가 닳아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감각의 박물관, 다이앤 애커먼)     


단맛은 우리가 쓰는 언어생활과도 관련이 많다.  

   

<쓴 것과 단 것의 구분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고,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아이, 기쁨, 믿음직한 친구, 연인은 모두 ‘달콤한’ 것이다. 후회, 적, 고통, 실망, 추잡한 논쟁은 모두 ‘쓰디쓴’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단맛은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를 나타내고, 어려움, 고난, 괴로움 등의 부정적인 의미는 쓴맛이 대신한다고 한다. 10대 초반까지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쓴 맛을 느껴보지 못한 순수의 시기이기 때문에 단맛을 선호하지만 이후 성장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나면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단맛에 무감각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맛은 어린아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맛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가장 많이 섭취해야 하는 음식 성분 중 에너지원이 주로 단맛을 내는 당류인데 한창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단맛을 더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설득력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단맛, 달콤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자 눈앞에 놓인 달콤한 사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늘 역부족이다. 단맛에 대한 아이들의 마음은 모든 이론을 넘어선다.

오늘도 아이들이 간식과 사탕에 대한 집중과 열정을 자신의 공부에도 조금만 나눠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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