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레시피 2탄
어려서부터 외탁을 했다. 특히 외할머니와는 무척 각별했다. 외할머니는 당시로는 꽤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가셨고, 연이은 유산 끝에 간신히 장녀, 우리 엄마를 낳으셨다. 집안 어른들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까지 보낸 귀한 딸이 대학 졸업과 함께 결혼, 그리고 1년 만에 낳아 안겨준 첫 손주가 바로 나였다.
어릴 적 여러 사정으로 잠시 외갓집에서 자란 시절도 있고, 학창 시절에도 방학만 되면 꼭 외갓집에서 절반을 보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믿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이유는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할머니는 요리를 썩 잘하셨다. 할머니의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다만 할머니가 요리를 좋아하셨는지, 가족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는 다 꿰고 계셨지만 정작 본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시절 어른들 공통점인가 싶은 것 중 하나, 입맛이 없으실 때 밀가루 음식을 찾으신다. 할머니에게는 주로 수제비였다. 할머니가 수제비를 하시는 날은 밀가루 반죽을 하실 때부터 전쟁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후 미군이 나눠주는 밀가루로 처음 수제비를 해먹은 이야기로 시작해 피난 이야기, 전라도 산골 어딘가에 숨어 지내던 이야기 등은 들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자취를 하게 된 계기가 곧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대학에 가까운 할머니 집에서 얹혀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집을 정리하게 되었으니까. 자연스레 내 첫 자취 살림은 거의 다가 할머니의 살림살이를 물려받은 것이었다. 지금도 금성 전자레인지와 그 시절 은수저 몇 벌을 가지고 있다.
자취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유독 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국물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밀가루 반죽이 쉽지 않았다. 반죽의 점도가 잡히지 않아 밀가루와 물을 조금씩 추가하기를 여러 번. 찐득한 반죽이 손에 붙어서는 냄비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괜스레 울컥했다. 화가 났다. 반죽을 집어 던지는데 그나마도 손에 매달려서 던져지지도 않더라. 꼴이 우습고 처량했다. 눈물이 났다. 수제비가 맘처럼 안되어서 울었다.
지금은 잘한다. 반죽도 척척 잘하고, 반죽 물도 멸치육수로 해서 맛을 살려주고. 할머니 스타일 그대로 마지막에는 계란 탁 풀어주고. 나이 먹으면서 먹는 양은 주는데 이상하게 수제비는 지금도 끝없이 들어간다. 혼자서 한 냄비도 먹는다.
몇 번이고 상상한다. 입맛 없어 할머니? 오늘은 내가 할게. 맛있죠? 그럼 누구한테 배웠는데.
PS. 연애 초, 이 사연을 처음 들었던 애인님이 수제비 반죽을 떡 하니 해주고는 ‘앞으로 수제비 반죽은 내가 평생 해줄게!’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프로포즈였나 싶다.
※ 오늘의 잘한 일
- 오랜만에 할머님께 인사드렸다.
# 오늘의 레시피 : 수제비
1.준비물
: 밀가루, 국물용 멸치, 애호박/주키니호박, 감자, 양파, 계란
2. 조리과정
1) 반죽은 크게 그냥 반죽과 익반죽이 있습니다. 익반죽은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하는 방법으로 반죽의 쫀득쫀득함을 늘려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멸치육수를 넉넉히 준비해서 익반죽 할 때 일부 사용합니다.
물과 밀가루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밀가루 6 : 물 1 정도이지만 어려우시다면 처음부터 모든 양을 한 번에 반죽하지 않고 준비된 양을 조금씩 첨가하면서 하시기를 권장합니다. 간을 위해 소금도 조금 넣어주세요.
2) 국물은 멸치 육수, 깔끔한 맛을 위해 내장과 똥은 제거해서 씁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감자와 양파부터 먼저 넣습니다. 애호박 또는 주키니 호박은 너무 오래 끓이면 풀어져 버리니 반죽 넣기 직전에 넣으시면 좋습니다.
3) 반죽은 먹기 좋은 크기로 얇게 떼서 넣습니다. 잘되지 않을 때는 1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손에 식용유를 살짝 묻히고 하면 쉽습니다.
4) 계란과 파는 마지막에. 취향에 따라 넣으셔도, 넣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