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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Aug 18. 2022

지성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3.

나는 지성(脂 기름 지, 性 성품 성)인이다. 기왕이면 지성(知 알 지, 性 성품 성)인이면 좋으련만.      


외출할 일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세수 정도만 하고 샤워는 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아닌가? 조금 부끄럽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요즘은 가뜩이나 각종 비대면 장보기 서비스가 잘 갖추어져 전업주부가 외출할 일이 조금 더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며칠 정도는 집콕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며칠 씻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엄청나게 꼬질꼬질해지고 기름이 번들거리는 더러운 몸뚱이를 마주하게 된다.     


꼬질꼬질한 몸뚱이는 내게 알려준다. 내가 얼마나 긴 시간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내가 얼마나 방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방치하고 바깥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얼마나 쓸쓸한지, 얼마나 무료한지, 얼마나 울적한지......에, 에이, 뭘 그렇게까지. 

    

종종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지난 며칠의 게으름이, 지난 몇 달의 안일함이, 지난 몇 년의 잘못된 판단과 부족했던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거울에 비치는 한심한 내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미운 놈한테 미운 구석만 보이듯, 스스로에게 미움받는 나는 자책만을 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면 지난 며칠 외출만 안했지 착실히 집안일과 공부를 했다. 지난 몇 달 시도한 것이 비록 다 성사되지는 못했으나 안일하게 주저앉아있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 다소 아쉬운 선택을 한 적은 있지만 그 당시, 그 순간에 충분히 노력했다.     


과몰입하지 말자. 이런 일로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자. 그냥 조금 게을렀지 뭐. 씻자. 구석구석 공들여서 씻고, 면도도 깨끗이 하자. 애인님께 오늘 저녁 외출을 권한다. 이제 저녁이면 날도 선선하니 가까운 번화가에서 외식을 하고 산책을 하자. 며칠 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홈웨어는 세탁기에 넣고, 옷방에서 신중히 외출복을 고르자.     


깨끗이 씻고 깔끔이 면도하고 외출 준비를 마친 나는 다행히 썩 못 봐줄 수준은 아니다. 지난 얼마의 시간 다소 불운했고 그 때문에 불행했을 수 있다하지만 그 때문에 앞으로도 불행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얼굴에 늘 달고 산다.

깨끗이 씻고깔끔히 차려입고기름지고 우울한 기분의 과몰입을 끊어내자.          



※ 오늘의 잘한 일     


- 목욕재계 하였다.

- 열심히 데이트 코스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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