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비아 Aug 09. 2024

외향적이지만,, 말을 줄이고 싶을 때

그냥,, 피식 웃고 말자,,

딱히 주관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늘 아쉽고 마음이 서걱거리는 관계,,

바로 시. 댁이다



어저께 5일은 내 생일이었다

50이 다 된 엄마로 살아가며 예전 어린 시절

미스적처럼 화려하게 축하받으며 생일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요사이 생각해 보니

결혼해 시댁에서 받아본 생일은

큰아들 낳고 첫 해,,

산후조리 마칠 즈음  한번

 한 번이라 절대 잊히지 않는다


용돈을 꾸깃꾸깃 봉투도 없이

쓰윽 주머니에 넣어주시던,, 그때

그때는 서운했었다

생일을 챙겨주었다 하시는 건

진정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봉투 없이 넣어주시는 것이 옛 어른들의 정을 내는

표현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졌다


김치를 잘 먹는 내가 예쁘셨던지

김치 한통을 보자기에 싸주시며

건네던 한마디

나 같은 시어머니 어데도 데이

옛날 같으면 ,,@%#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옛날 같은 뭐 밥상 겸상이 어디 니

우리는 부엌 끝트머리에서 밥그릇 들고

묵었나,,

세상이 참 마이 좋아진 거라

설이고 추석이고 우리는 하루 이틀이

어디 니 한 보름은 장보고 준비하고

손님치고 시댁에서 한 보름은 자고 온다 아이가

요새야 직장 다니고 하니 우짜겠노 만은

말이 그렇다는 기다


말이,,

말이,,

말이,,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듣고

있는 거지,.ㅎㅎ

옛날 고전 이야기

고전은 흥미 있는 소재가 있긴 한데

한때는 그래서

시댁에 가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듣기만 하고 내 할 일만

하고 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간이 지나

시어머님의 구구절절

읊으시는 소리 아닌 단소리로

그립다 ,,

오히려 안 하면 더 서운해진다

어디 편찮으신가 염려가 앞선다

요즘 연세 드시니 예전과 사뭇 다르게

여위시고 힘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나도 어렸었고,.

나이가 더해지니 점점 익숙해지고

이해가 되는 건,,

아마도 나이 들어가나 보다


늘 시어른들 생신은 꼭 챙기고

음식에 선물까지 며칠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했었다

물론,, 어른들은 늘 환히 웃으며

식사도 즐겁게 하시고 며느리의 정성에

기특하다며 좋아하는 내색을 지으신다

복날은 초중말 중 두 번은  해마다 챙기고

예전 자주 입원하셨을 때 복날이 끼어있어서

압력솥에 삼계탕을 끓여 병실에

옮겨간 적도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만은,,

말을 이어가자면 여러 일들이

쭈욱 이어지지만,, 줄이기로 한다


딱히 무언가 보상을 받고 싶다거나

바라는 건 아니었다,,

흠을 보는 건 더 더욱 아니고

최고의 며느리가 될 순 없지만

늘 도리와 예의를 지키는 며느리가

되길 바랐을 뿐,,


친구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며느리지만 딸처럼 생일상도 받고

식사도 함께하며

편지도 받았다며, 모임에선 늘

자랑처럼 친구들은 얘기를 툭 시작한다

그 대열에 낄 수 조차 없는 나는

냉소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시댁얘기는 안 하는 걸로,,이것 뿐이랴만은,,

물론 남편은 늘 내편이라

말로는 부모님 몫까지 본인이

잘하겠다며,,

달달한 남편이 있어서  이건 참

행운이라 생각한다


어쩜 시댁의 일상들은 늘 내게

무리수였음을,,

이해하기보다는 외우는 것

그것이 시댁에 대한 나의 이해가 되어버렸다


친정과 비교는 하면 안 되지만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

비교는 안 하기로 했다

모두가 나름의 방식의 표현이니까

무뚝뚝함도 속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울집으로 온 새언니 둘은 결혼하면서부터

아버지 엄마께 생일이면 용돈과

선물을 해마다 받으며 ,,

그래서인지 울 부모님과 새언니들과의

관계는 마치 친정부모님 대하듯

편하게 느끼는 걸보며 

부럽기도 했다


울 엄마의 무릎을 베고 귀를 파달라는

새언니

대구에서 챙기는 복날

삼계탕을 늘 울 엄마의 손맛이 최고라며

끓여 달라하며 딸인 듯 ,,

본인 생일에 울 엄마의 미역국으로

생일상을. 받던 언니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서운함이 쌓이니 그때는

시댁에 가면 말을 조곤조곤

잘하던 내가, 입을 꾹 닫게 되었던 것 같다

말이 반사되어 버리니까,,이후론,,침묵


아주 내향적인 사람이 잠시

돼버린다

그런데,, 나쁘지가 않다

때로는 비합리적인 대화를 주도하시지만

추임새만 넣고 리엑션으로

예의 없는 며느리는 되고 싶지 않기에

말대꾸나 긴 장문의 단어 절대

쓰지 않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보다는 할 도리 하며

바라는 건 없기로 했다


무언가 소유물로 생각하시는 듯 하지만

옛날분들은 다 그러시니,,

이것도 이해하기로 했다


자주 오시기 바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얼굴을 보여드린다


Why


좋아하시니까

툭 사투리로 반가움을 표현하시는


왔나,,

밥 먹었나,,


예의 없는 그런 며느리는 싫다

그냥 하던 대로

본연의 모습으로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보통의 며느리,,

시골로 내 삶의 자리를 옮긴후

모든것이 물 흐르듯,,

조용히 차곡차곡 쌓아본다


마음을 비우니까 사랑이 시작되었구나!

아버님 어머님,,지금처럼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이전 02화 흩어진 시간을 모으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