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트가 왔다. 왼쪽 앞발에 부목을 대고 있었다. 이 녀석은 우리가 예쁘게 마련해둔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고양이 냄새가 났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언제나 싹싹 비워져 있었다.
5일째. 대체 이 녀석은 왜 볼일을 안 보는 것일까.
고양이를 맡긴 사람이 용변을 찾아보라고 했다. 우리는 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변비일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러다 금요일 티비 뒤에서 둥글게 모여 있는 렛트의 대변을 발견했다. 티비대로 쓰고 있는 4단짜리 책장(우리는 이걸 눕혀서 티비대로 사용했다)은 오줌에 절어서 부르터 있었다.
"버리자."
디라스가 말해서 나는 그걸 들고 밖에 다녀왔다. 3000원짜리 대형쓰레기 분리 배출 스티커를 붙였다.
티비를 들어내고 바닥을 몇번이나 닦았다.
디라스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우리는 화장실을 새로 받으러 용인 어딘가에 다녀왔다.
"숨고 싶어 할 거예요. 어려서 그렇고 거실이 너무 넓어서 그렇고 겁이 많아서 그래요."
이렇게 잘 대해주는데 우리를 그렇게 상대하다니!
서운했지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였다. 말이 통한다고 해도 서로를 믿지 않을 것이다. 렛트가 하는 걸로 봐서.
렛트는 우리집에 청소가 되지 않은 곳을 잘 찾아 내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싱크대 문을 열어 놓자 싱크대 바닥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거긴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 거기다 볼 일을 보는 것 아닐까?"
고양이는 자기가 숨는 곳에 볼일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저긴 먼지 구덩이일 텐데."
렛트가 잠시 나온 사이 디라스가 달려가 싱크대 문을 닫았다.
"고양이는 원래 자기 용변을 숨기고 싶어 해요. 모래에 볼 일을 보고 거기 묻죠. 근데 티비 장 뒤였다고 하면 묻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용변을 볼 때 많이 불편했을 거예요."
싱크대 밑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고양이 털 냄새가 났지만 볼 일을 본 냄새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렛트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게 일이다.
"렛트? 야옹. 야옹."
렛트는 냉장고 뒤에 들어가 있었다. 거긴 손이 닿는 곳이었다. 그의 털을 잡고 끌어냈다. 안 나오려고 용을 썼다. 털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남았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목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무척 더러울 거야. 먼지 구덩이 속에만 들어갔다 나오니."
스스로 그루밍을 해서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이라는데 작은 혓바닥으로 먼지를 다 먹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혼자서 울어요. 밤새도록. 왜 그런 거죠?"
"낯선 곳에 가면 자기 말고 다른 고양이가 있나 찾는 거예요."
렛트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렛트가 야옹 야옹 누군가를 찾고 있을 때 들려주었다.
소파 아래 숨어 있던 렛트가 소파 밖으로 나와 소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높은 곳에서 들리니깐 고개를 하늘 쪽으로 쭉 뻗으며 소리 가까이 다가가려했다.
자기 목소리인데. 자기 목소리인 줄도 모르고 또 다른 고양이를 찾고 있었다. 그땐 내가 두렵지 않은지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외로움이 두려움을 이긴 걸까?"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소리가 들리는 허공으로, 내 쪽으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머리를 뻗으려고 한다. 뛰어 오른다. 자기 목소리인데 자기 목소리인 줄도 모르고. 외로움은 쓸쓸함은 저렇게 힘이 세다.
혼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났다. 아무도 없어서. 내 목소리를 나에게 들려주려고.
"고양이 한 마리는 외로워요. 키우려면 두 마리 이상을 키우세요."
집사들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