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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Jul 30. 2020

고양이 머핀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를 읽고 있었다.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렛트가 거기 오줌을 지렸기 때문이다. 모래 위에 떨어지지 않고 종이에 스며든 그것은 모래에 스며든 오줌처럼 감자로 자라지 못하고 그냥 종이를 누렇게만 물들였다.

  오스카 와일드는 고양이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완성한 건지 섬에서 그는 아홉 살 여자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죽은 고양이 머핀 때문에 울고 있었다. 아이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마부는 아이를 향해 욕을 퍼부었지만 와일드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얘야 왜 울고 있니?”

  그의 목소리는 친절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아이는 아빠가 고양이를 자루에 돌과 함께 넣은 다음 익사 시킨 이야기를 했다. 고양이 머핀이 식탁에 올라가 버터를 핥았기 때문이었다.

  와일드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고양이는 아홉 번 사는 거 알지? 머핀은 이제 세 번 살았어. 여섯 번을 더 살 거야.”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능력을 타고 났어.”

  그리고 소녀의 옆에 쭈그려 앉아 막 새로 태어나고 있는 머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마법사가 되어 머릿속으로 고양이를 불러냈다.

  “주인이 이제 솔랑주라는 이름을 붙였네. 이상한 이름이지? 그런데 멋진 모험을 하면서 신나게 살아갈 거야.”

  아이는 이상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의 말을 믿었다.

  “앞으로 머핀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 어떻게 해요?”

  “주소를 알려주렴. 내가 마음으로 머핀을 불러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게.”

  이후 오스카 와일드는 아이에게 여덟 통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 속에서 머핀은 수많은 모험을 하고 신나게 남은 여섯 번의 삶을 더 살게 된다.*

  소녀는 할머니가 되어 자기가 받은 편지를 손녀에게 읽어 주지만 죽을 때까지 편지를 보낸 낯설고 친절한 아저씨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실을 모르고 죽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 라는 동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나는 「행복한 왕자」의 열렬한 팬이다.     

  나는 렛트가 지린 책을 그늘진 곳에 놓아두었다. 안 변해야 할 것은 그늘에서 말리는 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하얀 종이에 물들인 색지를 말리면서 그랬고, 거문고를 만들 오동나무를 말릴 때도 그랬다. 집을 지을 때 쓸 서까래와 기둥을 말릴 때도 그랬다. 판소리에도 그늘이 있어야 심금을 울릴 깊은 맛이 난다고 했다.     

  마지막 몇 해 오스카 와일드의 삶은 그늘져 있었다. 사랑했던 연인과 함께 벌인 일로 강제 노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갇혔지만 애인은 면회를 오지 않았다. 「심연으로부터」는 교도소에서 그의 애인에게 쓴 사랑과 원망의 편지다. 출소 이후 그는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 한편도 쓰지 못했다. 아홉 살에 「어린왕자」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보르헤스는 와일드가 마지막을 보낸 그 호텔에서 죽고 싶어 했다. 오스카가 죽었을 때 그는 돈이 없었다. 이십 대에 그가 이룬 부와 명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모두 무너지고 없었다. 호텔 주인은 그에게 돈을 받아내는 대신 치료비를 부담했다. 지독한 유미주의자였던 와일드는 , 한 번의 키스는 한 인간의 삶을 망칠 수 있다, 는 말을 남겼다. 이건 누구에게 한 말이었을까?     


  그에게 그늘이 있었기에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늘에서 책이 냄새를 지우며 말라가고 있다. 그러나 번지고 스며든 렛트의 색까지는 날려버릴 수는 없다. 렛트의 기억마저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것을 사랑하지 못한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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