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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Jul 29. 2020

다림이를 만났어요


  렛트는 똥을 많이 싼다. 먹은 것에 비해 양이 많다고 생각한다. 적게 먹는 것은 아니다. 건식 사료는 쏟아 놓기 무섭게 사라지고 습식 사료마저 샅샅이 핥아서 바닥을 빛나게 했다. 화장실 모래에서 맛동산을 캐낼 때마다 그래도 먹은 게 그 정도인데 이정도의 맛동산을 생산하더니. 뱃속에서 음식을 뻥튀기는 것 같았다.

  똥을 적게 만들던 다림이 생각이 났다. 다림이는 덩치가 큰 데도 적게 먹었다. 먹은 것의 영양분을 확실히 빼고 껍데기들만 압축해서 모래에 묻는 것 같았다.  

  밥그릇이 넘칠 정도로 건식 사료를 쏟아 놓아도 부피가 줄지 않았다. 얼마나 먹는지 알아보기 위해 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의 사료를 놓아 두었는데 그제서야 다림이의 양을 알 수 있었다. 다림이는 그 사료들을 다 해치우지도 않았다.

  굶어죽으면 어쩌지?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임시 보호소일 뿐이었으니까. 처음 며칠 동안은 큰 걱정거리였다. 츄르를 손에 들고 다림이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뭘 좀 먹이려고 했다.

  상담사에게 연락을 했더니 "원래 양이 적은 애예요."라고 했다.

  다림이의 덩치를 본다면 상담사의 말을 믿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림이는 우리의 첫 고양이였다. 그래서 원래 고양이는 때가 되면 다들 이렇게 큰 줄 알았다. 대단한 뱃살도 다들 잘 먹고 하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림이는 유독 살이 많은 아이였다. 뱃살을 초음파로 검사했더니 지방이 가득했다고 했다.

  다림이는 5일을 우리 집에서 머물렀다. 처음부터 적응을 잘했다. 서재 방에 화장실을 놓아  두었는데 내가 보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을 잘 보았다. 책장의 빈 공간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거기 앉아 있었다. 하루만에 소파에 올라왔고 이틀만에 등을 대고 누워 배를 보였다. 배를 보이는 것은 고양이가 인간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솔로 털을 빗어주면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냈다. 횡경막에서 나오는 그 소리는 행복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림이는 옷방과 서재방을 모험하고 거실 곳곳을 모험하다가 마침내 좀처럼 열려 있지 않는 문을 발견했다. 안방 문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안방에 들어오는 것을 아직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다림이는 침대에서 사람과 함께 잠을 자던 고양이었어요."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 거실의 불을 끄고 우리가 안방에 들어갔을 때 다림이가 방문을 손으로 긁는 소리가 났다. 야옹 양옹 거리면서 꽤 오래도록 그러고 있었다. 안 되니까 손으로 문을 쳤다. 디라스는 안타까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소파 위의 불을 켜주었더니 거기 얌전히 앉아 있더라고 했다.

  마지막 날 밤 다림이는 또 방문을 긁으며 야옹야옹 소리를 내었다. 나는 못들은 척 하라고 했다. 이번엔 몸으로 문을 쿵쿵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쾌 격렬했다. 덩치에 맞게 묵직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 척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여니 방문 아래 장판이 뜯겨 있었다. 방문을 긁다가 부딪치다가 안 되니까 땅이라도 파려고 한 모양이었다.

  다림이의 성은 기씨였다. 기다림의 다림이었다. 주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출근을 하고 나서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다. 부동산 업주의 신고로 구출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보호소에서는 한동안 날카로운 녀석으로 통했다는데 우리와 지내는 동안 그는 여유로웠고 차분했다.

  마지막 날 아침 이동봉사자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다림이와 어떻게 헤어질까 고민 중이었다. 그를 어떻게 이동장에 넣지?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림이는 이동봉사자가 이동장의 입구를 열자 빠른 걸음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타고난 여행자처럼 갈 곳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발을 내디디는 것 같았다. 나는 서운했지만 다림이가 인간이라면 매번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저렇게 쿨하게 돌아서는 게 나은 것 같았다. 지금은 어느 집을 여행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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