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키운다는 이야기는 왜 했어요?"
"요즘은 해야 해. 부동산에서 물어봐."
경수 형은 세 마리를 키운다. 차례대로 틱, 택, 톡이라고 불러 본다. 첫 번째 형에게 온 고양이가 틱이다. 틱은 원래 형민이 형과 살았다. 형민이 형이 결혼을 하면서 경수 형에게 맡겼다.
"형수가 고양이를 싫어하거든."
택과 톡은 비닐하우스에서 태어났다. 경수 형의 아는 동생이 돌보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한 번에 열 마리 이상을 낳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고양이가 얼마나 크기에 뱃속에 그렇게 많은 새끼를 품고 있었을까. 주변에 그렇게 많은 새끼를 낳은 동물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 할머니도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았다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그건 고양이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평생에 걸쳐서 한 일이니까.
처치가 곤란했던 후배가 경수 형에게 전화를 걸어 의향을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마리가 경수 형에게 오게 된 것이다.
틱은 이제 15살이라고 한다. 어림 잡아 계산 해보니 인간의 나이로 75세쯤 되는 것 같다. 나는 고양이의 나이가 인간의 5분의 1이라고 생각한다. 택과 톡은 5살이라고 했다.
"택과 톡이 틱을 공경하나요?"
"공경?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택과 톡이 오고 나서 틱이 밝아졌어."
내가 형네 집에 놀러갔을 때는 겨울이었다. 이불 속에 뭔가 꿈틀대기에 화들짝 놀랐는데 틱이었다. 그때의 물컹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운다고 하자 집주인은 싫어했다. 혼자 산다고 할 땐 좋아했는데 고양이를 추가시키자 부동산 업자를 통해 거절 의사를 밝혀 왔다.
"고양이가 집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해서 그래. 장판을 뜯을 수도 있고. 집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고양이가 장판을 뜯는 일은 드물고 집도 그렇게 어지럽게 하지 않아. 인간이 집을 안 치워서 그렇지."
결국 형은 변두리 어느 재개발 지역에 가서 방을 얻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산다고 했는데도 집주인은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부수어질 집이라서 그랬겠지. 근데 여기가 좋아. 방도 세 개나 되고 넓고 싸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형제가 셋인데 집이 없을 때 형처럼 세를 들어 살았다. 애가 셋이라고 밝히면 주인들은 세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애가 둘이라고 말하고 이사를 한 다음 저녁에 나를 데려왔다. 그러면 주인이 거짓말을 했다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엄마는 그 집 마당을 열심히 비질했다. 나중에 우리 집을 갖고 나서 엄마가 적은 글을 보았다. 주인집 눈치를 보면서 마당을 쓸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 집에 개가 있었는데 형이 개에게 물렸던 적이 있다. 엄마가 주인집을 향해 화를 내었던 장면은 내 기억에 없다. 속이 상했을 것이다. 형의 허벅지에는 지금도 그날의 상처가 있다.
나는 경수 형이 쓴 글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한 잡지에서 형의 가족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젊어서 집을 나가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그랬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형은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갔다. 그 집에 가보니 장성한 배다른 형제가 형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형이 경수 형이군요. 아버지의 지갑에 형의 사진과 글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늘 품고 살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형이 누군지 참 궁금했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했던 형이 형이었군요. 부러웠어요."
아버지의 지갑에 들어 있던 것은 경수 형의 신춘문예당선 기사였다. 사진과 당선작이 함께 실린 기사를 신문에서 오려낸 것이었다. 자주 그걸 꺼내보고 당신 인생의 큰 자랑처럼 생각했던 분은 한 번도 경수 형을 찾지 않았다. 그래서 형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던 것 같다. 형을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형의 사진을 늘 품고 다녔다니 아이러니하다.
형의 사진은 너덜너덜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갑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꺼내어서 그걸 만져보고 다시 넣기를 얼마나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이 게 내 자식이야.' 그런 말도 했을까. 아이러니는 세계 구성의 원리이자 인식의 틀이라고 한다. 아이러니의 시작은 모순인데, 그 모순이 세계의 참 모습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이 인간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