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창틀에 앉아 렛트가 비를 본다. 내게 등을 보인 채. 무슨 감상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는가. 삼개월이라고 들었는데 인간의 나이로 쳐도 두 살이 채 되지 않는다. 우두커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자세. 엉덩이를 퍼질러서 만든 이등변 삼각형의 자세로 어둠 속의 비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저런 자세를 좋아하는 것 같다.
렛트도 나처럼 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집 안에서 비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렛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밑줄 그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실은
비에 젖지 않고도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요
고백하자면 나는
창밖의 비보다는
창 안의 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야 옳아요.*
렛트의 머릿속은 어딘가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고양이에게는 과거가 없다는데. 현재와 현재밖에 없다는데, 그래서 걱정도 없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렛트는 길고양이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다. 여기 와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가 깨끗한 곳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창틀을 닦아 놓았다. 이런 집사를 거느리는 게 빗속의 고양이들보다 좋지 않을까.
렛트는 우리 집을 점령해가고 있다. 냄새로는 이미 공기를 점령했다. 간간한 고양이의 냄새가 퇴근 후 문을 열면 느껴진다. 숨을 쉴 때마다 그를 느껴야하니 우리를 점령한 거나 마찬가지다.
엉덩이를 닦아주면 냄새가 덜하다는데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켜줘야 할 건 지켜줘야한다는 마음이랄까. 우리는 내외 하고 있다. 사랑한다면 견뎌야한다. 사랑하고 싶어서 나는 견디고 있다. 언젠가 디라스가 이렇게 말한 게 생각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러면 좋을 테지만 아닌 것 같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고 나머지는 견디는 거지. 다른 것을 사랑하는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