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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Aug 01. 2020

놀랍고 아름다운 렛트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 오늘 아침, 아니 새벽부터, 6시가 새벽인가? 문 앞에서 렛트가 야옹, 야옹 힘없는 목소리로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나는 피곤해서 좀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을 넘게 저러고 있다.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나의 기상 시간은 7시 30분인데, 의식은 깨어났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라 몸 가는데 마음이 가는 것이다.

  누워서 생각한다.

  "배고파?"

  그런 뜻일까. 아닐 거야. 아니었으면 한다. 렛트가 반복적으로 하는 저 말이 좀 더 차원이 높고 고상했으면 한다.     

 

  어떤 남자가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 개가 자기에게 무어라고 짓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개의 말을 번역하는 어떤 어플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올 때 그 어플을 켜보았다고 한다. 멍멍. 큰 소리로 짓는 것과 낮은 소리로 머어엉, 머어엉 짓을 때의 의미는 같았다고 한다.      


  "나 너보다 싸움 잘 해."      


  고양이의 말을 번역하는 어플도 있나?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렛트도 거실에서 긴 시간 야아옹, 소리를 내는데 이상한 말은 아니겠지.     


  번역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고 재밌는 점이 있다. 언젠가 리장의 어느 시골에 가서 잔치가 벌어진 집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다. 사람들은 손에 음료수 상자를 하나씩 들고 손님으로 참석했고 주인은 그들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한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니?"

  그가 구글 번역기를 보라면서 내 시선을 잡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 보니 '병살타돼지절'이라고 번역 되어 있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하다가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돼지를 때려서 죽이는 날'. 그러니까 '돼지 잡는 날'이었다.      


  모르는 말들은 모르기 때문에 신비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알고 나면 별 게 아닌데. 동물들이 우리에게 말을 한다면 뭔가 신비로운 말을 할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래주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안 그럴 것이다. 우리처럼 그냥 기초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식욕과 관련된 뭐 그렇고 그런 거.      


  김초엽의 단편 「스펙트럼」을 읽었다. 지구 밖 인간과 비슷한 지적 생명체를 만나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외계인들은 색채로 의미를 읽고 있었다. 그들이 색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지만 그 행성에서 할머니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명체의 보살핌을 받았고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어느 협곡에서 그 행성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 그때 그녀는 한 뭉치의 종이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것은 루이가 그녀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다. 종이들의 색채들은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색채 언어의 해석에 몰두하고 마침내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파악된 의미는 굳이 알아낼 필요가 없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한 문장  만큼은 손녀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다시 렛트에게로 돌아가서, 렛트는 오늘 새벽부터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나  대신 디라스가 문을 열고 나가 렛트의 밥그릇에 과자 같은 밥을 뿌려주었다. 그러자 시끄러웠던 아침이 침묵했다.      


  "나, 배고파. 일어나. 밥 줘."

  오늘 했던 말은 겨우 그 정도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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