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렌 Jul 31. 2020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창틀에 앉아 렛트가 비를 본다. 내게 등을 보인 채. 무슨 감상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는가. 삼개월이라고 들었는데 인간의 나이로 쳐도 두 살이 채 되지 않는다. 우두커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자세. 엉덩이를 퍼질러서 만든 이등변 삼각형의 자세로 어둠 속의 비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저런 자세를 좋아하는 것 같다.

  렛트도 나처럼 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집 안에서 비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렛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밑줄 그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실은

  비에 젖지 않고도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요      


  고백하자면 나는

  창밖의 비보다는

  창 안의 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해야 옳아요.*     


  렛트의 머릿속은 어딘가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고양이에게는 과거가 없다는데. 현재와 현재밖에 없다는데, 그래서 걱정도 없고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렛트는 길고양이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다. 여기 와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가 깨끗한 곳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창틀을 닦아 놓았다. 이런 집사를 거느리는 게 빗속의 고양이들보다 좋지 않을까.      


  렛트는 우리 집을 점령해가고 있다. 냄새로는 이미 공기를 점령했다. 간간한 고양이의 냄새가 퇴근 후 문을 열면 느껴진다. 숨을 쉴 때마다 그를 느껴야하니 우리를 점령한 거나 마찬가지다.  

  엉덩이를 닦아주면 냄새가 덜하다는데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켜줘야 할 건 지켜줘야한다는 마음이랄까. 우리는 내외 하고 있다. 사랑한다면 견뎌야한다. 사랑하고 싶어서 나는 견디고 있다. 언젠가 디라스가 이렇게 말한 게 생각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러면 좋을 테지만 아닌 것 같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고 나머지는 견디는 거지. 다른 것을 사랑하는 힘으로.     


*심재휘

이전 07화 곁에 있는 동안 아껴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