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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Sep 06. 2024

#42. 내 미래가 궁금해지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정확히 10년 전에는 궁금하지 않아서 포기하려 했었는데.

방금 5일간의 요가 워크샵이 끝났다. 아직도 드리시티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던 저음의 목각 풍경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것 같다.


흐린 날 잔잔한 빛이 비치는 깊은 호수의 표면처럼 마음이 일렁인다. 마치, 오래된 영화가 끝나면 한동안 먹먹한 것처럼. 흑백인지, 색채가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사진처럼 굉장히 마음이 오묘하다. 좋고, 싫음 같은 쨍한 마음들보다, 자주 오지 않는 감정임을 알기에 조금 더 계속되길 바란다. 쉬이 떠나가지 않았음 좋겠다. 감정아, 되도록 오래도록 머무르렴.


푸딩 덕분에 더 몽글몽글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고? 5일간 수련에 대한 스스로 준 보상.




지난 4월에 알게 되었다. 올 가을 드리시티에 달비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였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원장님의 스승님인, 마크 달비선생님. 안내 문자가 왔지만 '내가 감히?'라는 생각에 하루 늦게 신청하였다. 감히라 함은, 나랑 비교할 수 없이 훨씬 꾸준하며 오래도록 매트 위에서 시간을 보냈던 선생님들과 함께하여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차이가 너무 큰 데 내가 배울 것이 있을까? 그래도, 그래도..., ' 하며 주말만이라도 들어보자며, 주섬주섬 하루 뒤 문자를 보냈다.


배부른 소리였다. 새벽 5시 50분에 수련을 시작하는, 드리시티 수련생들은 부지런했고, 그들에게 스승의 스승을 만나는 시간은 늘상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당연하게 대기번호를 받았다. 티켓팅 실패.


그래서 포기했다. 평일반도 있었지만 불가능했다. 일을 하고 있었고, 퇴사 생각은 없었기에 5일 쉬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나는 1인 1팀의, 1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쉬면 일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는 타이밍으로 평일반의 기회가 내게 왔다. 과감하게 신청했다. 퇴사를 목전에 앞둔 사람인지라, 돈 걱정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냥 어떻게 되겠거니' 싶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현금을 고이 뽑아서 정성스럽게 봉투에 담았다.


신청 자체를 고민이 되던 전과는 다르게, 그냥 드리시티에, 매트 위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고작 2주 전에 퇴사를 물렀다. 하지만 이젠 1인 1팀이 아니다. 다른 팀원들이 생겼다. 5일을 쉴 수 있게 됐다. 얼떨결에, 포기하는 것 없이, 모두 곁에 둔 사람이 돼버렸다.




첫 회사에서 떠나던 21살, 그 당시 40살이던 과장님이 친한 사람들만 모인 저녁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좀 얼큰하게 취해있었음에도 이상하게 뇌리에 박혔다.

 

"동동, 다른 건 몰라도, 너가 원하는 건 놓지 말고 생각해 봐. 그럼 빙빙 둘레길로 돌아갈지언정, 그 방향으로는 점점 가까이 갈 거야. 내 동생을 보니까 정말 그렇게 되더라."


그 뒤로, '원하는 것을 바라고, 때론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내게 온다고 믿는다.


아주 작은 행복할 건덕지도 보이지 않아 죽음을 코앞까지 맞닿았던 때가 22살,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아직도 새벽 무렵 달빛만 들어와 방안이 남색으로 보이던 것, 정자세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것, 덮고 있던 이불의 무게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세 시간 내내 누워서 했던 생각은 "더 이상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였다. "내게 행복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러니 내겐 미래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때 원하던 것은 '행복'이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적어도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상하다. 때론 세상은 원하는 걸 정확하게 내 앞에 가져다준다. "자 이걸 원했지?"라고 말하는 것 처럼.


나의 사랑, 우리의 드리시티. 이 곳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한 수다.  




'뭐가 되어야지!'라고 계획한 것들은 수두룩했지만 모두 어그러졌다. 그 이후 여지껏 내 미래를 궁금해 했던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0년 뒤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지, 아니면 아예 딴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요즘 아주 선연하고 또렷하게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사진에 선명도 효과를 준 것마냥 머리속으로 그려본다. 이렇게 살고 싶어! 라는 마음을 보태여. 


앞으로 10년. 그 모습과 가까워졌을까?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까.


그리고 오늘, 10년을 기록할 수 있는 10년 일기장을 선물 받았다. 나의 10년. 조금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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