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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그래도 발버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기.

by 두부맘 Feb 24. 2025

 병원 진료는 죽어도 보시지 않겠다는 어머니를 보며 참담하고 좌절스러웠지만, 그래도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구글신은 나에게 ‘하루 한 시간 이상의 산책’, ‘균형 잡힌 식사’, ‘타인과의 잦은 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행히도 어머니께서는 걷기를 참 좋아하셨기에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방금 노력했다고 말했다. 추위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서 그냥 집에서 퍼질러 있었던 날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충실하지 못했던 날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으로 여전히 괴롭다.)


 산책을 나가는 길에 어머니 기분을 살피고, 기분이 좋아 보이시면 ‘산책하는 동안 심심하니까’라는 명분을 달아 두뇌를 이용하는 간단한 놀이를 하기도 했다. 구구단, 스무고개, 주제별 이름 대기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끝에 정착하게 된 놀이는 끝말잇기였는데,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는 어휘는 이미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재밌는 건(그 당시에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지만), 내가 ‘발라드’와 같이 ‘드’로 끝나는 단어를 제시하면 어머니는 한결같이 ‘드골’이라고 응수하셨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드라마’를 제치고, 어머니께서 태어나셨을 때쯤 재임했던 프랑스 대통령 이름을 대시다니. 뇌에서 인지 장애가 진행되는 건 대체 어떤 방식인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다음으로 시도한 건 요리였다. 어머니의 요리에 대해 떠올리려고 하니 이미 6-7년 전 일이라 기억이 많이 흐릿해졌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 당시에 어머니께서 직접 요리를 하셨던가? 분명 아버지와 내가 요리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머니께서 ‘이제 주방에서도 날 내쫓는다, 내 역할을 빼앗는다’고 하시며 부루퉁해 계셨으니 요리를 하시긴 하셨을 텐데,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들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로 떡볶이 같은 간단한 메뉴들 위주로 아점을 먹고, 저녁에는 배달 음식을 먹었던 것 같은데… 대충 넘어가자.


 아직 기억에 선명한 건, 어머니가 내 요리를 맛보는 걸 썩 내켜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들어 드렸던 음식의 맛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은 깔끔하게 인정하는 다. 평생 요리의 ‘ㅇ’에도 관심이 없었던 내가 근본도 없이 좋다는 재료만 잔뜩 넣어 간도 제대로 못 맞추고 내어드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 번은 시금치 프리타타와 오트밀죽을 해드린 적이 있는데, 오트밀죽을 맛보신 어머니 표정은 정말 압권이었다. 내가 결혼 후 남편한테 집밥을 차려주고, SNS에 요리 계정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아마 놀라 까무러치실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대화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경상도 출신 K-장녀 중에서도 상당히 무뚝뚝한 편이라(변명이다), 별 대화가 없는 집안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저녁에 일찍 주무셨던 어머니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 즈음이었고, 내가 일어나기 전부터 TV를 켜놓으시곤 그 앞에서 멍하니 앉아 계셨다. 늦게 일어난 나는 쭈뼛쭈뼛 어머니 옆에 붙어 앉아서, 기껏해야 TV를 보다가 나오는 배우에 대한 가십이나 일일 드라마 줄거리에 대한 복기,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나오는 식당을 보며 “맛있겠다”하는 정도의 수준 낮은 대화를 꾸역꾸역 이어나갔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어머니께서 관심을 보이실지 막막했다. 나의 노력은, 의무감으로 가득 차 서툰 소통을 시도하다가 어머니께서 졸려하시면 머리에 베개를 받쳐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치매에 관련된 정보를 끝도 없이 탐색하였지만,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여기는 어머니에겐 이것 이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밤이 되면, 세상모르고 주무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만 잘 되면 우리 집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나’에 대해 곱씹으며 숨죽여 울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자마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 부모님 속을 썩였었는데, 그제야 과거의 내 잘못이 후회됐다. 내가 어머니를 너무 괴롭게 만들어드려서 그 충격이 쌓이고 쌓여 저렇게 되신 게 아닐까, 매일 밤 죄책감에 깔려 압사당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도 되었겠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이제야말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닌다든가 하는 때깔 나는 효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누가 그 마음을 ‘펑’하고 터뜨려 고무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큰 이벤트를 곁들인 효도만이 효도라고 생각했을까? 평소에 조금 더 자주 집에 전화하고 얼굴을 비추는 것도 효도였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이기적인 딸이었던 내 모습을 끊임없이 자책하는 밤이 이어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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