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최악의 수를 두었던 걸까.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어머니는 초로기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 어머니의 증상이 너무나도 명확했는데, 왜 병원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더 걸렸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현대의학이 이렇게나 발달했는데, 빨리 진료를 받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면 그 원인에 따라 완치가 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하니, 의심 증상이 보이면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내원하여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치매의 치료는 환자 본인이 병인식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병인식은 본인의 증상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치매 환자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질환을 부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환자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상황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인지 능력 저하로 인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다 보니, 주변에서 (내가 생각하기엔 멀쩡한) 나에게 치매 검사를 권유하는 것 자체가 모욕적으로 느껴지고 억울한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어머니의 증상을 확인한 이후로, 치매에 관련된 키워드를 끊임없이 검색했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점, 50대 치매, 초로기 치매, 조발성 치매 원인, 치매 치료… 어머니의 증상은 치매가 확실해 보였다. 그 당시에도 인터넷에 치매를 검색하면, 조기 진단이 중요하고 약물 치료로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루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게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
기간제 백수 생활 내내, 나는 어머니와 병원 내원을 주제로 씨름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계속 당신은 아프지 않다, 병원 진료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시면서 울거나 화를 내셨고, 나는 답답해하거나 같이 화를 내며 싸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수없이 많은 자료들을 통해, 어머니께서 우울감에 잠식되면 치매의 진행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불안했다. “병원에 꼭 아픈 사람들만 가는 것도 아니고, 검사만 받아보자”는 나와 “검사도 필요 없다”는 어머니. 우리 모녀의 줄다리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한 번은 “저도 입사일 되기 전에 미리 건강 검진 한 번 받고, 가는 김에 어머니도 같이 검진받으시는 게 어떠시냐”는 논리가 통한 듯한 순간이 있었다. 웬일로 어머니께서 순순히 병원에 가자고 따라 나오시는 것이 아닌가? '옳다구나!'하고 집 현관을 나서는 내 머릿속은 어머니가 변심하기 전 얼른 병원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진료를 볼 수 있는 건가’하는 희망도 잠시, 역시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려고 하는 순간, 접수대 뒤쪽에 대문짝만 하게 적힌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을 보시더니 어머니께서는 대뜸 “나 안 미쳤다니까! 나를 왜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데!”라고 하시며 접수를 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셨다. 원무과 직원 분들도 난감했을 테다. 어머니를 잠깐 두고 직원 분들께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본인 동의가 없이는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날도, 그다음 날도, 나의 입사 시기가 도래해 서울로 상경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에 실패했다.
병원에 모시고 갈 요량이었다면, 확실하게 밀어붙여서 진료를 받으시게 했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즐겁게 좋은 추억이라도 만들어 드렸어야 했다. 인간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갖게 된다는데, 이도저도 못한 나는 두 가지 후회를 모두 떠안는 최악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대체 어떻게 했어야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