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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09. 2023

직장인에게 공정한 고과 평가는 없다

"업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나는 팀장은 아니지만, 10년째 고과를 받아 본 경력이 있다. 계속해서 팀장을 통해 고과 평가를 받아오면서, 내가 받은 고과 정말 그 해에 내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주어진 점수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고과 등급은 보통 S, A, B, C, D로 나뉘어 있고, 회사의 정책적인 결정에 따라 각 등급의 비율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올해 실적이 좋인사의 중요성을 인지했다면, 10프로 수준이던 A의 비율을 팀 당 20프로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10명의 팀원이 있는 팀에선 1명이 A를 받다가 올해는 2명이 A를 받을 수 있. 팀장도 한 명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어서 좋고, 팀원도 좋은 고과를 받을 확률이 올라가서 좋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의 실적이 나쁘거나 인사 정책이 소극적으로 변화한다면, C를 받을 확률이 올라가고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C를 연속으로 두, 세 번 받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지금껏 일반적인 상황을 얘기했지만, 특별한 등급인 S와 D는 도대체 언제 받을 수 있는 고과인 것일까? S는 팀을 넘어 회사차원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나도 지금껏 이 등급을 받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 정말 실적을 올려서 S를 받고 조기 진급하는 능력자가 있는 반면에, 그 정도 성과는 아닌데도 팀장과의 친분 또는 정책적인 결정에 의해 받지 않아야 될 사람이 S를 받는 경우도 보았다. 반대로 최악의 고과 등급인 D는 어떨까? 정말 팀장에게 제대로 찍히거나, 일을 못하는 수준을 넘어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정도라면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다. 나처럼 1년도 안되어서 팀을 옮기겠다고 말하는 팀원도 D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올해도 직장인들은 작년에 일한 성과들을 평가받으며, 고과 등급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평가를 잘 받았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기대 이하의 등급을 받고 한숨을 쉬거나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 자기가 고생한 것은 뻔히 알지만, 상대적으로 팀이라는 큰 조직의 관점에서는 그만큼의 실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조직적인 관점에서 실적과 성과가 뚜렷한 대상에게 좋은 고과 등급이 주어지고, 정말 실적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고과 등급이 배정되었느냐를 보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개인 고과 등급은 비공개이므로, 서로가 눈치 싸움을 하며 서로의 고과 등급을 알아가는데, 회사에서는 비밀이 없기 때문에 보통은 자연스레 구성원의 고과 등급을 알게 된다. 그럼 합당한 등급 부여로 생각되는 경우가 있고, 반면에 불합리한 처사로 생각되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성이 중요해진 사회는 불합리한 고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속한 팀은 몇 년 전부터 고과 평가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예전과 같이 일방적으로 팀장이 부여하는 것에서 탈피하고, 실적 항목에 따른 포인트를 누적하여 최종 고과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하였다. 즉, 고등학교 시절에 수행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평소 수업 참여도를 증진시키는 것과 같다. 매 실적을 하나씩 포인트로 부여받는 것인데, 은 포인트를 받는 기준이 모호하고 각자의 업무량과 업무 성격이 다른 것에 대해 일관되게 부여할 수 있는 기준도 사실 없다. 그저 구색만 갖추고 구성원들을 포인트로 줄 세워서 장이 고과 등급을 부여할 때 좀 더 수월하게 평가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구성원들은 포인트를 쌓기 위해 평소에 구성원 간 협력보단 경쟁이 앞서 있고, 포인트로 줄 세운 결과대로 1등이 꼭 S나 A를 받거나 꼴등이 꼭 C나 D를 받지는 않는 것이 확인되면서 불필요한 절차만 하나 늘었을 뿐, 애초에 목표하던 공정성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이런 허울뿐인 고과 제도 속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실적대로 줄 세워서 1등에게 S를 주고 꼴등에게 D를 주면 가장 공정한 고과 제도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말처럼 쉽다면 고과 제도의 공정성 논란은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줄 세우기가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일을 수행하지 않기에 업무량과 업무 성격에 따른 평가 기준을 일원화할 수가 없다. 일을 가장 오래 한다고 실적이 가장 많은 것도 아니고, 개인 실적이 좋다고 해서 다른 평가 지표들까지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팀장도 사람이기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평가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 구성원들의 사기와 분위기도 살펴야 하고,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구성원은 또 별도로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C를 한 명에게 연속으로 준다는 건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와 같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이 있는 팀장은 일을 못하고 실적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직속 팀원에게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고과를 계속 주기는 힘들다.


  결국 직장인들에게 공정한 고과 평가 제도는 다고 보는 게 낫다. 본인이 이번엔 나름대로 남들보다 실적도 확실하게 냈고, 팀장이 시키는 것도 즉각 대응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것들 외에 고과 등급을 결정하는 데 있어 너무나 많은 변수가 산재해 있기에 괜한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구성원들의 작년 고과 등급의 분포, 팀장의 인식, 동료 평가, 라인, 행운, 조직 분위기, 조직 방향성 외 다양한 기타 변수들이 모두 본인 고과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니 너무 고과 등급에 목메어서 잘 받았다고 우쭐 댈 필요도 없고, 잘 못 받았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조직에서 고과 제도의 공정함을 조목조목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업무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팀장에게 어필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한 전략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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