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Sep 10. 2023

회사에서 한 조직이 망가지는 과정

"리더가 갖지 말아야 할 태도"

  몇 년 전 조직개편이 있었고 내가 존경하던 상무님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임원이 되어도 회사의 노예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먼저 일하자!


얼마 뒤 새로운 실장님이 우리 조직의 리더가 되었다. 실장 밑에는 3개의 팀이 존재한다. 이 3개의 팀의 리더인 실장으로 인해 지금까지조직은 지속적으로 망가지고 있 것이다. 늘은 어쩌다 이지경까지 온 건지 그 과정을 속속들이 되새겨보고자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 리더가 바뀌기 전까지 조직이 다시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언젠가 회사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로 자리 잡았을 때 반면교사로 삼고자 할 뿐이다.



  새로운 실장이 부임하고 가장 먼저 선언한 슬로건은 '서비스 마인드'였다. 우리 실의 업무는 다양하다. 직접 개발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업무도 있고, 개발 지원을 하는 업무도 있다. 게다가 유관부서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분석 결과를 도출해 주는 기타 업무도 있다. 담당한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 각자가 해당 업무들을 배분하여 처리하고 있다. 실장이 외치는 서비스 마인드는 유관부서에서 들어온 업무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라는 의미와 같다. 물론 이렇게 하게 되면 유관부서에선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기타 업무의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각자의 개발 프로젝트를 신경 쓸 여력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실의 위상을 '지원 부서'로 깎아버림으로써, 실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의 힘을 빼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에서는 소문이 빠르기 때문에 유관부서에서는 더욱 당당하게 분석 담당자에게 업무를 떠맡긴다. 담당자는 실장이 선언한 말이 있기 때문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결국 야근을 하거나, 본인 개발 프로젝트를 축소하면서까지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게 된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원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커리어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퇴사하는 인원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실장이 유관부서에 체면을 내세우기 위해서 이런 방식의 업무 운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장 가관인 건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과 체계이다. 실장의 가장 큰 권한은 실 소속 인원들의 고과권이다. 고과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조직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실장은 처음 부임했을 때 이 고과권을 흔들며 말했다.


"저는 이 고과를 최대한 공평하게 줄 것입니다. 번갈아 가면서 좋은 고과도 나쁜 고과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리고 팀장 자리는 최대한 경력이 오래된 사람에게 주어질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경악했다. 고개를 끄덕인 이들은 회사 생활에서 경쟁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과 경력이 꽤나 높은 직원들이었다. 반대로 경악한 이들의 의견은 이랬다.


"아니, 여기가 공공기관도 아니고... 일 잘하는 사람한테 고과를 잘 줘야 조직이 발전이 있는 거 아닌가?"


"경력이 오래됐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팀장을 나이 순으로 하는 게 맞나?"


물론 나 또한 후자의 입장이었고, 이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몇 년째 실장이 생각하는 고과 체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더 이상 조직의 성장은 없었다. 이 조직에선 일을 최대한 안 하고 다음 고과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게 일하는 전략이었다. 점점 소속 인원들은 바보가 되어가는 듯했고, 일을 서로 미루는 것에서 팀원들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실장은 말로는 조직의 성장을 얘기하지만, 행동은 그저 안정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아무 탈 없이 본인 조직이 잘 머무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최근엔 실장의 조직 운영에 환멸을 느낀 후배 한 명이 퇴사를 했다. 그 후배는 말했다.


"도저히 제가 성장하거나,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점점 나이만 먹어가는 우리 팀 부장님들처럼 될까 봐... 빨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고요..."


그러고 나선 보기 좋게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실장과 후배는 몇 번의 면담을 하였지만, 실장이 그를 회유하거나 붙잡지는 못했다. 장은 그가 나가는 것에 이러한 변명을 갖다 붙이며, 본인의 책임을 최대한 회피했다.


"걔는 돈 때문에 대기업으로 이직한 거라... 내가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더라고."


물론 대기업으로 가는 것에 돈이나 복지가 중요한 건 맞지만, 굳이 직원들에게 돈 때문에 나간 거라고 말함으로써 본인의 책임은 아무것도 없는 양, 회사가 임금이나 복지 경쟁력이 없는 것이고 본인은 조직 운영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꼴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실장의 가장 큰 목표는 이 조직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는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도 없고, 그러할 만한 능력이나 실적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인 바로 아래 팀장급에서 능력이 있는 인원들을 제한하고 견하는 태도를 이따금 보인다. 3개의 팀에서 가장 능력 좋고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팀장이 실적과 성과를 올리고자 하면 하면 할수록 더욱 견제는 심해진다. 예산과 경영진을 핑계로 개발을 추진하기 어렵게 하거나, 개발 인원이나 개발 프로젝트의 할당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실장이 가장 끌고 가고자 하고 좋아하는 팀장은 3개의 팀 중 가장 능력이 없고 후배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장 크게 갖고 있는 팀장이다. 이 팀장이 회사에서 실장 권한의 상을 받거나 혜택을 받을 때마다 다른 팀장과 팀원들허탈해한다. 심지어 같은 팀 소속 팀원들 마저도 고개를 젓는다. 이렇듯 실장은 본인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본인 자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싹을 자르고, 본인보다 능력이 낮고 회사 평판이 좋지 않은 이들을 챙김으로써 본인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한다.



  실장이 바뀌고 나서 거의 6년 동안에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직은 서비스 마인드로 인해 유관부서에서 단순히 지원 부서로서의 역할만을 강요받고, 조직의 커리어나 성과는 축소되었다. 공공기관식 고과체계로 인해 열정적으로 일하던 직원들의 실적이 하향 평준화 되었고, 경쟁과 갈등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오래 다니는 것만을 목표로 하였다. 그나마 똑똑하고 젊은 인원들은 빠르게 본인 커리어 향상을 위해 이직 준비를 하였다. 점차 조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본인에게 떨어진 일을 미루는 데만 급급했다. 실력 있는 팀장은 일 할 동력을 잃게 되었고, 실력 없는 팀장은 본인의 성과가 실장이 만들어준 것만은 아니고 본인의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직은 6년 만에 산으로 가고 있었고, 군데군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내가 만약 어떤 조직의 리더로 자리한다면, 절대 이런 식의 조직 운영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전 02화 나는 얼마나 일에 매몰되어 있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