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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r 21. 2023

회사에서 운 좋은 사람은 이길 수 없더라

이것은 날 위한 깨달음인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유독 실력에 비해 운이 따르는 사람이 있다. 회사에서 무슨 실력을 논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업무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존재한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함께 일하다 보면 정말 '우와!' 하게 되는 '프로 일잘러'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아, 정말 이건 아닌데...' 싶은 동료들을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테다. 한, 두 번은 그저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게 한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누적된다면 그는 나에게 있어서 일 못하는 동료 또는 선, 후배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일을 못한다고 깨닫기는 어려울 듯싶다. 심지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80프로가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대변하듯 본인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는 나보다 5년 정도 선배이다. 내가 그에게 느꼈던 첫인상은 '사람 좋아 보이네' 정도였다. 허허실실 잘 웃고 다니고 회사에서 여유도 있어 보였다. 잘 몰랐을 때는 그가 능력이 있어서 일을 다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여유를 즐기는 줄 알았지만, 나는 서서히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일단 그는 업무를 마감일까지 최대한 미루었다. 그러다가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야근하며 일을 급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본인 일만 그러면 상관없는데 나와 엮인 일에서도 이러니 일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제출 일정도 하루, 이틀씩 꼭 늦어졌다.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매번 나와 협업할 때마다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자랑스러운 듯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새 일이 사라지기도 하더라고. 허허..."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일이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 대신 고생했겠죠...'


  나만 그를 실력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윗사람들 중에서도 그를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특히나 그의 업무를 보고 받는 관리자들은 그를 직접적으로 호되게 꾸짖었다. 얼마나 호통을 치는지 사무실 전체가 울려서 무슨 상황인지 모든 팀원들이 파악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는 상사에게 보고하고 된통 깨져서는 본인 자리로 왔을 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는 한동안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나는 제일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그를 보고는 '정말 얼마 못 가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웬걸 그를 호되게 야단치던 파트장, 실장, 임원까지 줄줄이 매해 회사에서 한 명씩 사라졌다. 이직 또는 권고사직 등으로 우리 팀의 관리직을 이탈하게 된 것이다. 팀 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에게 잘 못 보이는 상사들은 회사를 잘린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 말이다. 국 그를 괴롭히던 상사들은 전부 사라졌고 그의 업무 패턴을 이해하는 관리직들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상사들은 그가 업무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내세우며 그를 주요 요직에 앉히고는 고과로 보상해 주었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인원들이 당황했지만, 그는 당연한 듯 여겼다. 결국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최근 건강상의 문제로 그의 바로 위 선배가 퇴사를 결정했다. 그 선배는 파트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괴롭히진 않았지만 항상 그는 선배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그의 선배마저 퇴사를 하게 되면서 그는 결국 파트장을 맡게 되었고, 그 파트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원이 되었다. 본인의 윗사람들이 결국 건강, 이직, 권고사직, 자발적 퇴사 등으로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했지만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오래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야.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한순간에 없어져도 회사는 잘 굴러가잖아. 나도 부담이 크지만 결국 해낼 수 있을 거야."


이젠 난 그의 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실력보단 그 상황에 맞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게 장땡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정의하는 실력이라는 것은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회사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이 따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내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깨달음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조금 더 직장 생활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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