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프롤로그)
입사 11년차의 새로운 팀 생존기(1)
입사 10년 차. 길다면 긴 세월 동안 회사에서 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난 변한 게 있나? 작년부터 회사를 다니면서 이러한 물음들이 내 머릿속에서 한동안 따라다니고 있었다. 일을 하며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더라도 내 손은 익숙한 듯 결과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실험 데이터와 그로 인한 보고서의 결론까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내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주저하고 있는 것은 내 생각과 마음일 뿐이었다. 아, 이게 매너리즘이라는 것일까. 내가 비로소 매너리즘이라는 것에 빠지고 만 것일까.
변화가 필요했다. 결혼도 했고 3살 난 딸아이도 있었다. 회사를 10년이나 다녔지만 형편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사지 못해 벼락거지가 되었을 뿐.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있는 친구들은 이미 자기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모아놓은 돈과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본인들의 보금자리를 뒤늦게 마련하며 안도했다. 도대체 그동안 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지난 과거를 후회만 하고 있기엔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이 아른거렸다. 나 스스로도 이러한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회사 밖에서는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내 경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다른 회사가 있으면 주저 없이 경력직으로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병행할 수 있는 돈벌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온 것도 있었고, 내 실력과 경력이 이것뿐인가 하는 한계도 맛보았다. 회사 안에서는 딱 시키는 일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않았다. 평균 고과 B만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실적을 냈다. 좀 더 잘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오늘 할 업무가 일찍 끝나면 남들보다 일찍 퇴근했고, 오늘 할 업무가 끝나지 않아도 정시에 퇴근했다. 자율 출퇴근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회사에서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에서 더 많이 쓰고자 했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중에 선배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내게 말했다.
"너 혹시 다른 거 준비하는 거 있어?"
"아니, 왜 갑자기?"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의아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하지만 선배는 여전히 의심의 눈이었다.
"회사에서 너 태도가 달라진 거 같은데? 예전에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같더니만..."
이 선배와 그리 업무적으로 부딪칠 일은 없었지만, 오며 가며 나를 보았을 때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나는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지 못하고 에둘러 변명했다.
"그냥...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같고... 예전만큼 일이 하기가 싫어졌어."
선배는 의심의 눈을 걱정의 눈으로 바꾸며 말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바꿔보는 것도 좋은 돌파구가 될 거야. 우리 회사가 그렇게 꽉 막히지는 않았잖아."
그의 말을 듣고 자리로 돌아와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회사 밖에서는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더라도 회사 안에 있는 시간은 어차피 고정적으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기에, 대충 흘러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선배가 이 정도로 눈치챌 정도면, 내 직속 상사들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내 태도의 변화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갑작스레 바뀐 나의 회사에서의 모습들로 인해 내 직장인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대략 연초부터 10개월 정도의 방황의 시간을 갖고 난 뒤에야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은 내 경력을 성장시키는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말이다. 회사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바꾸지 못한다면 좀 더 밀도 있게 보내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개인적으로 다른 일을 벌이고 있더라도 직장인 신분은 장기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RPG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부캐가 아무리 화려해도 본캐의 강력함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물론 부캐에 빠져 본캐를 역전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새로운 시작으로 봐야 한다. 아직 새로운 시작이 준비되지 않은 내게는 본캐인 직장인으로서의 성장이 또 다른 강력한 기회를 안겨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난 오랜 방황 끝에 나의 경력을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업무가 있는 팀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팀을 옮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