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팀 생활을 시작하다.

입사 11년 차의 새로운 팀 생존기(5)

by 똥이애비

인수인계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기존에 하던 일과 비슷하니까 쉽게 적응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인수인계받은 일은 그저 스쳐가는 업무 중 하나였다. 새롭게 창설된 팀에 왔으니, 팀의 새로운 업무들은 거의 내 전담 업무가 되었다. 누구도 안 해 본 일이라서 주변에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새로운 일의 업무 절차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으니 실수가 많았고, 알고 보면 금방 할 일도 돌아 돌아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팀 내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업무의 절차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맨 땅에 헤딩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팀장도 힘겨워하는 나를 보고는 예전에 했던 업무 이력들을 공유해 주었다. 다행히 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서 참고 자료들과 노하우들을 쉽게 전수받을 수 있었다. 기존 자료와 업무 절차서를 차근차근 읽어가며, 팀의 업무 양식과 보고서의 흐름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보고서를 쓸 때 어느 팀은 결론을 마지막에 쓰는데, 어떤 팀은 맨 첫 장부터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있. 팀장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와 단어를 미리 알아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선호하는 색과 폰트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매우 사소하지만, 팀 나름의 전통이 있어서 따라주는 것이 좋을 거라 여겼다. 아무래도 난 이 팀에서 굴러온 돌이니 말이다.


업무뿐만 아니라 내가 이 팀에서 생활하며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팀장은 수시로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팀을 끌고 나가는데 서포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사실상 본인보다 연차가 높은 부장이 한 명 있지만, 팀장은 그를 완전히 믿고 의지하지는 않고 있었다. 나머지 팀원들 2~7년 차 정도 되는 연구원들이었는데, 실무에 치이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역할을 맡기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팀장도 고민이 많겠구나'하는 심정도 들었다. 이 팀에 팀장보다 연차가 높은 한 명뿐인 부장님은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다. 나는 팀장과 부장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알지만 굳이 나까지 부장님과 껄끄러워질 필요는 없었다. 난 적당한 거리에서 부장님과의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전문성이 뛰어나고 아직까지 일에 열정이 크신 분이라 분명 배울 게 있다고 여겼다. 또한 나머지 팀원들과의 관계도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팀의 화합을 위해 팀장과 부장 사이에서 서로 말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었다.


다행인 건 난 나머지 연구원급들과는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팀에 있을 때부터 함께 친목 모임도 많이 했고, 술도 자주 마셨었다. 이 팀에 오고 나서도 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고, 함께 일하게 된 것을 반가워했다. 심지어는 팀의 불만사항이나 팀장에게 말하지 못하는 애로사항들을 내게는 쉽게 털어놓기도 했다. 새로운 팀 업무로는 아직 미숙하지만, 팀 생활 관점에서는 나름 연차가 더 높은 내가 조언해 줄 일들이 꽤 있었다. 그렇기에 이 팀에서 내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팀장에게 부드럽게 전달해줘야 할 역할이 있었다.



지내다 보니 새로운 팀에서 내게 기대하는 것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나의 팀 업무와 생활의 방향성이 서서히 잡혀가고 있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전문성을 빠르게 갖추고, 조직 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이 팀에서 해야 할 역할이었다. 앞으로 이 팀에서 몇 년을 더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 길을 혼자서만 가야 한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한번 가볼 만한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팀 사람들이 좋다면, 팀 업무는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새로운 팀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고 있었다. 새로운 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어느 날, 기존 팀에 있던 친한 선배가 지나가며 말했다.


"너 요새 팀 옮겼다고 너무 웃으면서 일하는 거 아냐?"

"제가요?"


나름 적응하느라 애쓰는 얼굴 표정일 거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배의 말을 듣고 새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난 새로운 팀에 아직까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족했다기보다 회사생활에서 열정을 쏟을만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렵게 찾은 이 돌파구가 새로운 기회의 땅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파내려 갈 수 있는지는 순전히 나의 몫이다. 열정이 금방 식어버리지만 않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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