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팀 운영방식과 방향을 맞췄고 팀 분위기까지 파악했다면, 이제 남은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이다. 바로 이 새로운 팀에서 나만의 포지션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미 팀장은 나에게 상당한 업무를 맡긴 상태였고, 이를 통해 내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새롭게 맡은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좀 더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팀을 옮기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동시에 밥 먹듯 야근을 해야만 했다. 맡은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았고, 배워야 할 이론들도 많았다. 또한 팀장이 기대하는 수준에 만족할 만한 성과물을 내야만 했다. 일단 가장 우선적으로 팀장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이 팀에서 내 역할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새로운 팀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내 밑으로 신입사원이 한 명 들어왔다. 팀장은 내게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 과장 업무가 많아질 거야. 그래서 조 과장 밑으로 신입 한 명 준 거니까 잘 키워서 활용해 봐."
아직 내 업무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벌써 신입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내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이렇게 된 바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그와 일을 함께 나눠서 할 수 있도록 업무를 조정하기로 했다. 난 십 년간의 회사생활 노하우를 그에게 전수해 주었고, 그 또한 내 업무량을 꽤 많이 덜어내 주었다. 새로운 업무에 있어서는 서로 탐구하며 토론하여 합의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순식간에 내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동료가 되었다.
난 점차 업무 영역을 확장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한 계단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 이 정도면 빠르게 적응하고 자리 잡고 있는 거지...'
문득 나와 전환배치를 한 선배는 기존에 내가 맡았던 업무에 잘 적응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동안 새로운 일에만 치이고 있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그 선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역시나 뒤늦게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난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배, 일은 할만해요?"
"말도 마...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 어떻게 했어?"
"적응되면 금방 할 수 있어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죠."
"넌 다 적응한 거야?"
"아뇨, 저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리 조급해하고 빨리 적응하려 해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깨닫고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선배와는 일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서로 물어보자고 다시금 합의했다. 가까운 곳에 업무적으로 쉽게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게다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업무 외적으로 팀원들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졌다.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장과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부장 직책임에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팀장과는 별개로 그와 어느 정도의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이 팀에서 터줏대감 같은 그에게 업무적인 노하우도 많이 얻었다. 부장도 팀장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내겐 쉬이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난 팀장과 부장 사이에서 관계 개선의 교두보 역할을 자처했다. 그래야 팀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인원이 얼마 없는 작은 규모의 팀에선 팀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매우 소중하고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팀장과 부장 다음으로 연차가 높은 나는 나머지 후배들 네 명과 더욱 친밀해지려고 노력했다. 괜히 꼰대소리 듣기 싫어서 일과시간 중 커피를 자주 사주면서도 어쭙잖은 선배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대화를 듣고 공감하고자 했다. 다행인 건 내가 그리 정신연령이 높지 않아 억지로 공감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들이 들을 만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들도 내가 싫지 않은 듯 우리는 팀 전체 회식이 아닌 별개의 모임을 만들어 술도 자주 마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팀과 팀장에 대한 불만 사항들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의 불만사항들을 나의 목소리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팀장에게 은연중에 내비쳤다. 팀장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슬며시 흘리며 얘기한 것이다. 물론 팀장도 그리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하여 팀 운영에 참고하였다.
어느새 몇 달 만에 난 이 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업무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나의 영향력이 넓어져 있었다. 물론 바꾸고자 한다면 새로운 인물이 금세 또 자리를 잡겠지만, 나름대로 내 색깔이 담긴 지금의 팀으로는 절대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이렇듯 팀장 다음으로 팀에서 목소리를 뚜렷이 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 옆에서 사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 드라마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감초'같은 역할이 된 것이다. 한 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팀원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팀에서 빠지면 아주 심각하게 팀 역할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람이다. 팀장의 오른팔일 수도 있고, 팀원들의 버팀목일 수도 있다. 팀에서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포지션 구축을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거나, 훌륭한 고과를 받고 싶거나, 회사에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누구보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