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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Feb 18. 2024

1.요즘 결혼 이런가

딸은 나를 전혀 닮지 않았다.

외모부터도 너무 달랐고, (아빠 닮았다.) 사람들이 어쩜 너희 지랄맞은 부모사이에 저런 아이가 나왔냐고 할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착하고, 겁이 많고, 배려심이 깊었다.

주변에서 하도 그러니 두딸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응..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야. 우린 절대 저렇게 살지 말자 언니랑 다짐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잘 큰 거야."


눈치 없고 사람 멍하게 만드는 팩트만 날려 친구도 별로 없는 막내의 심드렁한 대답이다 .

옆에서 큰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위의 외모와 성격이 남편과 완전히 정반대인 걸 보면 무의식 속에 큰애도 아빠에 대한 상처가 깊었던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 아팠다.

다행히 남편 덕분에 남자 보는 눈이 생겼는지 사위는 볼수록 진국이었다.

대기업에 다닌다고는 했지만, 젊은 나이에 소도시 30평대 아파트도 대출없이 장만해 놓았고, 결혼 자금도 제법 살뜰히 모아 일찌감치 부모님께 독립이 되어 있었다. 큰애도 집에서 다니며 직장 생활을 해서인지 적지 않은 돈을 모아 놓았다.


결혼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식장을 계약하고 온 아이들을 보며 어차피 헤어질것 같지는 않아 둘을 불러 현실적인 얘기를 했다.


" 모든 결혼 준비는 너희들이 결정하고 너희들이 행복한 선택을 해.어른들이 개입하는 순간 결혼이 복잡해지고 너희들은 질질 끌려다닐거야.

양가쪽 눈치 보다가 서로 싸울 일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행복한 결혼 준비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불행해져. 나는 너희들이 결혼 준비하면서 설레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최대한 간결하고 합리적으로 준비해. 어른들 눈치보지마 니들이 결혼하는거야 니들 하고 싶은대로 해."


"넵 어머님 잘 알겠습니다."

"응, 알았어 엄마"


예단 때문에 평생 시댁을 원망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웨딩 드레스를 시어머님과 시이모가 골라줘서 마음에도 없는 드레스를 입었다고 불평하던 친구도 있었다.

결혼 날짜도 좋은 날 받아 양가 부모님들이 정해 통보하는 식이었다

폐백은 시댁 식구들만 들어오는 거라고 해서 우리 아이를 업어 키운 친정 엄마는 앉아서 절 한번을 못 받았다 (나는 아이낳고 결혼했다. 나의 결혼스토리는 '내가 이 인간이랑 이혼 안하는 이유'에서 찾아보시길 바란다)


아니나 다를까 손녀가 결혼 한다고 하니 시어머님께서 궁합은 보고, 날은 좋은 날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했냐고 말씀하셨다.

"네 어머님 궁합도 아주 좋대요. 사위가 사주도 아주 좋대요. 날도 좋은 날 받았어요."

"응 그래그래 잘 했다 잘했어."

사위 생일도 모르는데 사주는 무슨 ...

연애 한 번 못해본 놈들이 만나 결혼까지 가게 됐으면 궁합이 좋겠지 나쁘겠나 그걸 왜 타인에게 물어보고 안심하고 겁을 내고 결정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 때 궁합이 안좋다고 파혼한 커플도 더러 있었다.)

노인네들 기분 좋으시라고 시원하게 거짓말했다.


"그래, 부모님께는 말씀 드렸어?"

"네, 부모님들께서도 저희 편한대로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갈등의 싹이 되는 예단부터 없애자고 했는데 다행히 그쪽 부모님들도 고맙게 흔쾌히 넘어가주셨다.


"근데 상견례도 안 하고 예식장부터 덜렁 잡아도 되나?"

"엄마, 그 예식장은 일년 전에 안 잡으면 못 잡아."

아니. 요즘 젊은 애들 결혼도 안 하고 출산율도 저조하다는데 뭔 1년씩이나 걸리나.....

"그럼, 결혼 예물은 어떻게 하려고?"

"우리 반지만 맞추기로 했어"

"그래, 엄마가 같이 가서 봐줄까?"

"엄마가 왜 반지를 봐? 오빠랑 나랑 가서 둘이 보고 결정 하면 돼."

"......."

음 그렇군

"그럼 웨딩 드레스는 엄마가  같이 ...."

"아니, 엄마랑 취항이 안 맞잖아.그냥 오빠랑 가서 결정할게."

"........"

"신혼 집에 가전제품 좀 사야 안돼? 침대도 싱글이라며? 엄마가 같이 가 줄....."

"오빠 너무 똑똑한거 있지 인터넷으로 다 알아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킹사이즈로 사기로 했어."


그려. 뭐 똑부러 지네..

뱉어낸 말이 있으니 할 말은 없는데 이렇게까지 부모가 개입을 안하나 조금 섭섭했다.


주얼리 가게 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요새 애들은 똑띠들이 많아서 (똑똑한 애들 경상도 사투리) 옛날처럼 목걸이 반지 귀걸이 그런거 안해요.딱 둘이 커플링만 하더라구요"

"예물 맞추는데 부모가 따라오냐구요? 아니요 지들끼리 그냥 와서 해요 음.. 부모가 따라오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고오론 경우는 부모가 돈 대주는 집!!!"


아 그렇구나...애들이 당당 할 수 있는 건 나의 쿨한 조언 때문이 아니구나

스스로들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어서구나 

(실제로 양가집에서 한 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오롯이,둘이 번 돈으로 모두 해결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결혼 준비기간 내내 애들은 행복해했다.

 결혼식 청첩장도 지들이 만든다고 둘이 머리를 맞대고 뭐가 좋은지 까르르 넘어 갔다.


말은 그랬지만 딸이 결혼 한다는데 너무 아무것도 못 해주는거 같아 큰 마음먹고 생전 가지 않던 백화점에서  식기세트라도 사 줄까 싶어  사위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어머님. 쓰던 거기는 하지만 그릇도 많고 제가 오래 자취해서 웬만한 주방도구는 있습니다 뭐 부족한거는 저희가 결혼해서 돈 벌어 하나씩 장만하는 재미도 있지 않겠습니까?"

 덩치는 산만한 게 말은 어찌 저리 곰살맞은지

다시 봐도 이뻤다


근데 뭔가 좀 서운하기는 했다

결혼이 2주 남았는데 난 아직도 애들 신혼집을 가보지 못 했다.


"엄마가 와서 뭐 하려고? 우리가 알아서 할게 결혼식 끝나고 오면 되지."


이 가시나.... 엄마껌딱지였던 애 맞나


막내에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니

" 뭐 그런걸로 서운해 하노?언니 결혼하면 우리도 현관 비번 바꾸자."

지 애비랑 똑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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