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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Mar 02. 2024

결혼 선물

기브 엔 테이크

<미국에서 한달 만에 온 편지 무슨 실수가 있어 못 받을 뻔 했다>


1화부터 연재글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테지만, 큰애는 생긴 것도 수줍음 많고,  단정한 인상이라(고등학교 선생님께서 붙여준 별명이 조선미인이다.)  연세 드신분들이 어째 저리 참하게 생겼냐고 어딜가도 며느리 삼고 싶다는 말을 듣는 아이다.


성격도 요즘 애들같지 않아  또다른 의미에서 조선 시대 사람같은  보수적인 사위랑 쿵짝이 잘 맞는다.

둘다 20대 30대인데 해외여행을 한번도 안 가봤다면 말 다했다. (사위는 애매하긴 하다)

하도 신기해서 물어봤다.


"응? 해외여행? 한국에도 다 있는데 거기가서 뭐해? 여기도 예쁜데 많은데 뭐하러 고생해서 거길 가?"


"예 장모님. 출장으로 잠깐 중국 일본 다녀오긴 했지만 별로 구경하고 싶은 게 없어서 일만 보고 바로 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해외 잘 모릅니다."


술도 못하는 사위는 큰애랑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맛있는 거 사먹는 게 유일한 취미라니 내 기준으로 참 희한하고 놀라운 바퀴벌레 한쌍이다.


둘다 감정 기복이 큰 애들이 아니라 그런지 거의 2년을 사귀었는데도 한 번을 안 싸웠단다.

뭔가 다툼이 생길 일이 있으면 성격상 서로 불편함을 못 견뎌 무작정 사과하고 본단다.


매일이 전쟁같은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눈꼴시다 놀리면서도 서로 눈만 마주쳐도 눈이 다 감기도록 웃는 요것들이 그저 감사하고 눈물겹다



"엄마, 오빠랑 오늘 싸웠어. 진짜 00 나쁜놈이야"


오!! 드디어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냐


그래 이제 드디어 본성들이 나오는 거구나 사람이 한결같을 수가 있나

내심 반가웠다.

 싸움이 불편해 빌미조차 안 만든다는 두 아이를 보자니

심중의 얘기도 안하고 서로 배려만 하다가 정작 결혼해서 폭발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 되었더랬다.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고 싸우고 나서 서로 어떻게 푸는가가 결혼 생활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쯤은 크게 다투고 풀어나가길 바랐다.


"왜 뭐 때문에 싸웠는데?"

생전 안 싸우던 애들이 그래도 싸웠다는 걸 보니 수습 못 할 큰일이면 또 어쩌나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었다.


"아, 내가 그렇게 손편지 써 달라고 했는데 절대 안 써 주는거 있지. 자기는 손편지 쓰는 게 너무 힘들대.

내가 생일에 다 필요 없다고 편지만 써 달라고 했는데 이런 비싼  꽃다발이나 주고...오빠 진짜 미워..내가 결혼하기 전에 00한테 꼭 편지 받고 만다."


씩씩거리면서도 행여 오빠에게 톡이 올까 폰을 손에 놓지 않던 큰애는  사위가 카톡으로 미안해 사랑해를 날리니 하회탈눈을 하고 헤헤거리며 오빠랑 통화한다며 문을 쾅 닫는다.

이... 병첨병 바퀴벌레들아...


큰애는 유독 손편지를 좋아한다. 유치원에서도 학부모가 주신 어떤 선물보다도 우리애 잘 봐주셔셔 감사하다는 쪽지에 더 감격하고 뿌듯해 한다.

아 이거다!

번뜩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나의 동지가  결혼하는데 뭔가 평생에 남는 큰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물질적 선물은 어차피 가난한 살림에 서로 빚이라 여길테고, 물욕이 없는 큰애의 성정상 정성어린 마음의 선물이 더 큰 감동이겠거니 했는데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로 싸웠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큰애에게 줄 손편지를 모아서 선물로 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

남편과의 불화, 경제적 부담, 실수로 생겨버린 늦둥이 막내로 생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을 때 내 생일조차 모르는 남편을 대신해  큰애가 생일 선물을 내밀었었다.

생일 날 머리에 쓰는 고깔 모자를 노란 색 도화지로 만들어 엄마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돈이 없으니 별짓을 다 한다 싶어 웃었는데 고깔모자

안을 보니  깨알같이 뭔가 써 있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누구누구에요. 00이가 엄마 생일이라고 적어 달래요.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00의 베프입니다.00이가 엄마를 너무 좋아해요. 학교에서도 어머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님, 안녕....."


"어머님 00이가 안 쓰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협박해요.하하하 "

"어머니 저 수업 시간에 몰래 쓰고 있어요. 크크크"


고3학년 자기반 아이들 23명에게 받은  생일 축하 메시지가 빼곡히 쓰여져 있었다.

여자아이들이라 그런지 글씨도 칼라풀하고 온갖 그림에 하트에 정신이 없었다.

순간 목이 메었었다.


서울에서 중간에 전학을 와 초등학교때 은근한 따돌림으로 학교생활을 힘들어 해 선생님께 불려 가 상담을 받은 후로 내성적인 아이는 더 움츠러 들었고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 온 아이들이 대부분인 중학교에서도 아이는 숨죽이며 살았더랬다.


좀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가서야 숨통을 틔우며 곧잘 학교 생활을 재잘거리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좀 놓였지만 초등학교 때 트라우마가 또 도지면 어쩌나 불안했었다.


그런데 반아이들의 빼곡한 축하 메시지는 너무 밝고 건강하고 햇살같은 아이의 학교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우리같은 지랄맞고 못난 부모에게서 어찌 너같이 이쁜 아이가 태어났는지....


아직도 그때의 알록달록한 글씨 하나하나가 선명하다.

그래, 오케이 10년이 넘어 기브엔 테이크다. 아이를 아는 모든 분께 전화를 돌렸다.

우선 사위부터


"어머님?" 

생전 전화 한 번을 하지 않던 내가 근무 시간에 전화를 하자 사위는 바짝 긴장을 했다. (퇴근 시간에는 둘이 붙어 있을까봐 부득이 근무 시간에 해야 했다)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편지 부치거라 ..정성들여서 이쁘게.."


"넵 어머님 ,당장 내일 쓰겠습니다."


우편함에서 넣어 두기로 했는데 혹시  아이에게  들킬까봐 익명으로 보내라고 했더니 홍길동이라고 보냈더라... 이건 센스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


그렇게 우리 아이를 10년 넘게 보아온 분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역시 너는 다르구나 멋지다."


"미안 나 진짜 손편지 자신 없다."


"야 넌 글쓰는 사람이라 별거 아니지만 우리는 엄청 부담이다."


"네 어머니 제가 꼭 이 번주까지 보낼게요.00가 진짜 좋아 할 거에요.제가 눈물이 나요"(이렇게 말한 아이가 고깔모자 축하 메시지 보내 준 아이들 중 하나다)


"걱정마, 내가 진짜 멋있게 써 줄 게. 아 내가 왜 울컥하지?"


별스럽다고 욕도 먹고, 대단하다고 나도 써 먹어야겠다고 감탄하는 친구들도 있고, 3일간 낑낑거렸다는 친구도 있었다.

미국에서 한 달 후에 온 편지도 있었고,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에서, 부산에서 전국에서 날아 들었다. 같은 고향에 사는 친구들은 밤에 몰래 우리 집  우편함에 넣어 놓았다.

신기하게도 23장의 편지를 받았다.


아이는 편지를 받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역시 내 편지는 싱긋 웃고,지 남편 될 놈의 편지에는 눈물을 줄줄 쏟더라.. 에잉...자식 새끼 키워봤자....)

<협박으로 받아 낸 사위의 편지>

            <계속 도착 중인 편지들>

                     <은퇴하시고 책방 하시는 선생님은 아이들 책도 같이 선물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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