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제가 너무 바빠서 도저히 결혼식에 못 갈 거 같아요.진짜 죄송해요. 제가 대신에 축가 선물로 드리면 안 될까요?"
백종원 골목 식당에 나가서 신촌덮죽으로 유명세를 탄 친구는 TV 방영 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 장사가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걸 아는 지라, 당연히 딸의 결혼식에는 못 올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다정도 병인 성격에, 우리 아이를 어릴 때부터 봐 온 친구라 몹시 마음이 쓰였나보다.
"뭐? 니가 축가 부른다고?"
"네?와하하.. 아뇨, 조카 있잖아요 둘째 동생 아들 "
아 ! 아이돌로 데뷔하고 간간이 결혼 축가 알바 뛴다던 그 조카....
"오 좋지 좋아! 애들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할게."
결혼식에 축가 부를 사람이 없다고 징징대던 큰애 생각이 나서 마음이 들떠 아이 퇴근하기만 기다렸다.
"야! 큰애야, 신촌덮죽 친구가 축가 쏴 준다는데? 왜 그 아이돌 했던 조카 있잖아. 잘 됐지?보컬이라 노래도 잘 한다더라."
내가 한건했다고 뿌듯해하며 얘기했는데 기뻐 할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반응이 신통찮았다.
" 음...좀 그래 엄마,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결혼식에 와서 축가 부른다는게 안 내 켜"
"뭔 소리야? 돈 받고 축가 부르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친구도 아니고 오빠도 나도 모르는 사람이 우리 결혼 축가를 부른다는 게 싫고 불편해"
"......"
써글것 ..그럼 내 앞에서 걱정하며 징징 거리질 말던가..
"분위기 왜 이래?"
누가 퇴근을 하든말든 제 방에서 제 할일만 하는 막내가 물 마시러 나왔다가 뽀루퉁해 있는 우리 모녀를 보고 물었다.
"아! 축가?그래 나도 좀 그렇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무슨 축가고?"
"그치 그치?"
내 눈치를 보던 큰애는 동생의 말에 옳다구나 맞장구쳤다.
"그럼,내가 불러줄까?"
"진짜?"
"뭐? 안돼!"
큰애와 내가 동시에 말했다.
질겁을 하고 안된다고 말한 쪽은 나였다.
우리 가족은 심각한 음치들이다.
남편은 박자치에 나는 박자고 음정 다 엉망이고, 큰애도 작은애도 우리 유전자를 정통으로 맞아 다들 메에에염소 소리가 난다.
한 번은 남편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데 하도 박자가 안 맞아 그 노래를 그렇게 부르면 어떡하냐고 내가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리듬을 타며 불러주는데 애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엄마가 더 못 부른다고 음정이 하나도 안 맞다고 진짜 뒹굴며 웃었다. 나도 내 노래를 듣고 너무 웃겨 웃어버렸다.
그럼 니들이 불러보라고 하니 그것도 못 하냐고 둘이 부르는데 이번에는 남편이랑 내가 배를 잡고 웃었다. 지들도 어?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계속 그런다 .
그런 집이다.
그런데 네가 그 많은 하객들 앞에서 축가를 부른다고? 아써라 말아라 결혼식이 장난이냐
"그래 뭐 어렵나?나 학교에서 피피티 만들어서 발표도 잘 해. 하나도 안 떨어. 내가 할 게"
아니 고등학교에서 발표하는거랑 결혼식에서 축가 부르는게 같냐고 !!
제 동생의 노래 실력을 뻔히 아는 큰애가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거절 할 줄 알았는데 웬일로 반색하며 좋아했다.
"엄마, 나 결혼 할 때 막내가 축가 불러주면 감동해서 울 것 같아."
일하느라 바쁜 나를 대신해 아홉 살이나 어린 막내를 진짜 업어서 키운 큰애와, 작은애는 둘만의 동지애와 애틋함이 있었다.
큰애 생일에 카드를 써 주면 내 카드는 씩 웃으며 보다가도 동생이 써 준 카드에는 눈이 빨개지며 매년 울었다.
그래 니들이 그렇게 좋다는데 뭐 까짓거 좀 못 부르면 어떠냐 그건 그거대로 또 재미지.
좋구나... 축제로구나
"엄마, 나 다리 하나 부러져서 입원했으면 좋겠어.아!! 누가 나 기절시켜주면 좋겠어. 일어나면 결혼식 끝나있게.."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중요한 날을 앞두고 망정맞은 소리를 하는 작은 놈의 등짝을 후려쳤다.
축가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둘이 머리를 맞대고 결혼식장에 띄울 영상을 편집하고 , 큰애가 작은애를 업고 있는 사진을 골라 넣고, 10센티 노래를 개사해서 갖다 붙이고 뚝딱뚝딱 만들 때까지도 킥킥거리고 웃던 막내는 결혼식이 가까워지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3 수험생이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매일매일 노래 연습을 해도 염소똥 소리가 나자 급기야 좌절하기 시작했다.
"아, 미친... 가사 완전 까먹으면 어떡하지?
거기 결혼식장 커서 내 목소리 안 들리면 어쩌지? 엄마 엄마 내가 미쳤나봐 왜 축가한다고 했지?
나 좀 말려주지!"
이 써글것들은 뭐만 안 되면 내 탓이다.
고소하다 이놈아 내가오케스트라 연주회 때 죽을 것 같다고 벌벌 떠니(내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3탄에 나온다.궁금하신 분들 찾아보시길..) 뭐 그런걸로 떠냐고 아무도 엄마 관심 없다고, 한심하게 보더니 막상 네가 해보니 죽겠지?너도 함 당해봐라 ...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아냐, 마이크 크게 해달라고 하면 다 들려. 노래도 박자가 딱딱 맞아. 진짜 많이 늘었어. 목소리도 십센친가 뭔가 이 노래에 딱 좋아."
한달을 내내 불러도 나아지지 않는 노래에 괜찮을까 걱정되는 속마음은 구겨넣고 어르고 달랬다.
공부를 이만큼 해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애가 그래도 언니일이라고 선뜻 용기를 내 준것이 기특하기도 했다.
막내는 밥만 먹으면 중얼거리며 노래 연습을 했고, 또 가끔은 노래를 안 부르고 10센치 노래에 맞춰 '히히히히 히히 히히' 거리고 다니길레 뭔 소리냐고 했더니 열심히 유튜브를 찾아보니 이러면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다고 하더라며 처녀 귀신처럼 '히히히 히히 히히히' 하고 다녔다.
목이 아픈지 목을 꽉 잡고 다니며 연습을 했다. 공부를 이만큼..... 아니다 아니야.
결혼식 전날 당사자인 큰애보다 더 떨어 니가 결혼하냐는 놀림을 받은 막내는 청심환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찡찡댔다.
걱정이 무색하게 작은애의 축가는 온 결혼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두고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언니의 결혼으로 작은애는 또 훌쩍 자라 있었다. (자세한 얘기는 7화쯤에 결혼식이야기에서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