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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Feb 25. 2024

3.예단비

늙은 엄마의 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 결혼이 한 달도 안 남았으니 바쁘시겠다고 한다.


예단비도 없애고 폐백도 패스하고

주례도 없다니 은사님 찾아 주례 부탁 할 일도 없고,

가전제품도 사위 쓰던 거 쓴다니 사러 갈 일도 없고

집도 사위가 살던 아파트에 들어가니 신혼집 알아볼 일도 없고,

웨딩사진에 웨딩 반지에 신혼여행지에 애들은 바빴지만

세상 할 일이 없었다.


새삼, 결혼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게 맞지

열심히 키워줬으니, 결혼은 지들이 돈 벌어가는게 맞고, 지들 결혼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그건 지들 몫이고, 

너희 결혼에 우리가 바쁜것도 이상한거지... 주인공은 너희들이니 우린 조용히 응원해 줄 뿐.



복병은 이상한 곳에서 터졌다.


"어? 엄마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온갖 병에 우울증을 달고 계신 엄마가 전화 오면 겁부터 덜컥났다.


"야야.. 애기한테 들었는데 그 시댁에 아무것도 안 한다며?"


"응.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안 주고 안 받기로 했어 폐백도 없애고..."


"그기 그런게 아니다. 어째 결혼하면서 시댁에 아무것도 안하니?그럼 우리 애기 가서 밉보인다말이다."


시골살이 서울살이를 골고루 하신 엄마는 사투리와 서울말을 번갈아  쓰시며 혀를 끌끌차고 역정을 내셨다.


노인네들 진짜... 궁합보라는 시어머니나 예단비 보내라는 친정 엄마나 ...고루하고 귀찮고 번거로웠다.


"엄마, 요즘 애들은 예단 예물 그런거 안 해요 .폐백도 없앴는데 예단은 무슨.. 그냥 지들끼리 알아서 하게 놔 둬요."

짜증을 참고 말했다.


"그기 그런게 아니라고! 다 필요없다고 하지만 암껏도 안 해봐라. 애 눈치 준다"


"아 싫다고!! 내가 왜 잘 키워서 돈까지 갖다바쳐야 하는데?"


"니 좋을라고 하나 ? 우리 애기 책잡힐까봐 그러지!!"


"그런 분들 아니야! "


"니가 그걸 어째아노?사람 마음이 안 그렇다.니 돈 없으면 엄마가 좀 보태줄게 "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노후 준비를 못 해 언니네 애들을 봐주며 못 먹고 안 쓰고 모은  피같은 엄마돈을 받기도 싫거니와

 도무지 왜 시댁에 예단비를 줘야하는지 납득이 안가 더 짜증이 났다. 이상하고 비굴한 관습이었다.

엄만 엄마 말만하고 난 내말만하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끊어 버렸다.


"엄마, 할머니가 뭐라셔?"

큰애가 슬며시 들어와 곁에 앉았다.

"할머니가 전화 세 번이나 와서 시댁에 옷값이라도 줘야한다고 계속 그러셨어.어떡해?"


,, 이 할마씨..

내가 안 통할 것 같으니 마음 약한 큰애에게 전화를 걸어 달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쉬며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음 나도 좀 그래 너무 아무것도 안 하니까...오빠도 나때문에 돈 많이 썼어."


별명이 조선 미인인 큰애는 성격도 보수적이고 소심해서 튀는것도 싫어하고 남의 눈치도 많이 보는 아이다.


내 가치관은 내꺼고 결혼은 아이가 하는 거니 아이가 마음 편한게 가장 중요했다.


"엄만, 예단비 이런거 옳은 전통 아니라고 생각해. 그치만  고마운 마음은 있어. 예단비가 아니라 이제 우리 가족이 되는 인사로  선물을 드리고는 싶어."


"응 엄마, 나도 예단비 이런 건 싫어.

그래도 옷 한 벌 정도는 해 드리고 싶어. 엄마가 나 결혼 선물로 침대 사준다고 한 거 그 돈 드리면 안 될까?"

"침대는?"

"우리가 사서 할부로 조금씩 갚을게."

"그게 네 마음이 편해?"

"응!!"

그래 네 마음이 행복한 쪽이 정답이겠지.


"엄마 뭐 해?"


"그냥 있다. 왜?"


늙은 엄마는 아직도 기분이 안 풀리셨는지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곰곰이 생각 해 보니  엄마 얘기도 틀린 건 아닌거 같아. 큰애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엄마 말씀대로 시부모님이랑 시누이 옷값 정도는 보내기로 했어요. 그게 예의같아. 엄마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그래..... 잘 했다 ...

이제서야 하는 얘기지만,

너 큰애 낳고 결혼식 했을 때

엄마가 돈이 없어 아무것도 못 했잖아.

시댁에서 결혼 자금 다 대고 예물도 다 해줬는데 우린 형편이 돼야 말이지..결혼식장에서도 사돈 볼 면목이 없어서 눈 마주칠까봐 이리저리 피했다. 그 때 사돈 얼굴이 참.....

니가 시댁 갔다와서 무슨 싫은 소리 들으면

우리가 못 해줘서 애를 구박하나 평생 마음에 걸리더라"


우리 별거 했을 때 아이 맡길까봐 벌벌 떨며 연락도 제대로 안 받던 시부모님 대신에  큰애를 7살 때까지  키워주시고 , 남편놈이 없어 아이 아플 때 같이 응급실로 달려가 주시고, 혼자 돌잔치할 때 그 많은 음식을 차려 내셨던  엄마는 내가 시댁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돈때문에 당당하지 못했던 당신의 죄스러움을   켜켜히 쌓았구나 ..... 반백의 나이에도 부모 마음을 이렇게 헤아리지 못하구나


아이가 결혼하는데 내가 철들고 있었다. 철들놈은 따로 있는데.....


깜짝 놀라는 사위에게 예단비 절대 아니니 다시 주실 생각하지 말고 금액도 약소하니 성의라고 말씀 잘 드리라고 했다.


시댁 어른들은 펄쩍 뛰며 다시 돈을 돌려 주셨고 나는 예단비 아니고 정성이라며 다시 주고 또 돌려받고 결국 큰애 화장품비 명목으로 반을 돌려 받는걸로 촌극을 끝냈다.

 

생색은 나혼자 다 내고 친정 엄마 한도 풀어드리고, 큰애도 마음 편했고, 시부모님들도 좋아하셨다.

그래 서로들 다 기분 좋고 행복하면 악습이 아니고 전통이겠지


돈이 돌고 돌아 정이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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