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티나인 Feb 21. 2024

상견례

웃는 모습이 똑같네.

아이들의 결혼 예식장이 잡히고 6개월 후에야 양가 어른들의 상견레를 할 수 있었다.


입 싼 나를 타산지석 삼아 큰애는 시댁 쪽 어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그쪽 분들이 몹시 궁금했다.


"엄마, 절대 이상한 말 하지마. 책 이야기도 절대 하지말고 어려운 이야기도 하지마. 집안에 대해 묻지도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


얘는 나를 뭘로 아는걸까

나중에 시부모님 될 그 어려운 자리에서 내가 책 이야기를 왜 하며, 경우없는 질문을 굳이 해서 불편하게 만들 일을 왜 하겠는가


"내가 또라이냐 거기서 왜 책 이야기를 하겠어?"

"아니, 엄마는 충분히 하고도 남아.  잘난 체 하지말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그냥 아무 말도 하지마.."


사위 나이가 많다보니 그분들의 나이가 우리보다 12살 이상은 많았고, 어려운 형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신다는 것은 아이에게 물어물어 겨우 얻어낸 정보였다. (우리라고 뭐 일용직에 비정규직이긴 매한가지였다)

벌써부터 저 집 사람인것처럼 내 입단속을 시키고 시부모님들이 혹여 상처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가 어처구니 없고 얄미웠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어서 오이소."

새빨간 넥타이를 맨, 작고 다부지게 생긴 바깥 사돈분의 걸걸한 목소리에 조금 놀란 남편은 어색하게 악수를 했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궁금하지도 않은 뻔한 질문들이 몇 번 오갔고, 침묵이 조금 흐르면 직원들이 때맞춰 음식을 내오며 먹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아이들이 고심해서 고른 한정식집은 단아한 외관과 걸맞게 음식도 정갈하고 깔끔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명당 족히 10만원은 넘을 것 같았다.

안사돈분도 쏟아져 나오는 음식에 저걸 다 우예먹을꼬 하시며 싸 갈 궁리를  하셨다.


"장모님께서 알러지가 있으시다고 사위분께서 알러지 식품은 다 빼달라고 하셨어요.

안전하게 드셔도 됩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직원이 음식을 내오며 견과류는 뺐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옴마, 이쁜 것.... 지나가는 말로 한 번 한 걸 어찌 기억하고....생긴 건 곰돌이같은 애가 우찌 이리 세심할꼬

그려 남자는 외모가 중요한게 아니여....( 남편이 복숭아 깎아달라고 해서 나 복숭아 알러지라고 하니 언제부터 그랬냔다. 7살 때부터다. 웬수야. 그러면 일회용 장갑끼고 깎아주면 안되냔다. 이 미친......)


"이래 좋은 날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요. 한 잔 할까예?"

술꾼으로 알려진 바깥사돈분에게는 모든 음식이 기가 막힌 술안주였다.


심한 술꾼인 아버지때문에 어릴 때 볼 꼴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술 한 잔, 담배 한 개 피를 안 피운다는 사위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고 순해보이며 말이 없던 안사돈은 혹여나 바깥분이 실수 할까 안절부절 못했다. (후에 알고 보니 술 안 마시기로 단단히 약속을 하고 왔단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며 분위기가 싸 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큰애에게 또 나댔다고 욕을 먹든 말든 분위기 수습부터 하자


"그럼요, 이런 날 술 해야지요. 당신도 한잔 해야지요?" (사돈 앞이라 존댓말 썼다.)

소주는 입에도 안 대는 남편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바깥사돈은 얼굴이 환 해지셨다.


"아 내 어렸을 때는 말입니다. 김일 ..거 박치기 김일 압니까? 그 양반이 마...."

참소주 한 병이 들어가니 바깥사돈은 말씀이 많아 지셨고, 안사돈은 연신 바깥사돈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다.


"아 고만 꼬집으소, 아프다."


"이 양반이 이 어려분 자리에서 뭔 그런 말을 ..."


안사돈은 말 못 하게 막았고, 바깥사돈은 기다려보소를 연발하며 소싯적 잘나가던 때의 라떼이야기로 안주 드실 생각도 못 했다.

허벅지를 연신 꼬집히면서도 꿋꿋이 할 말하는 바깥사돈분도 ,꼬집는 걸 감추려고 탁자 밑에서 손을 부지런히 놀리는 안사돈분을 보자니 웃음이 나왔다.


"그쵸 그쵸 김일 알지요! 저도 어렸을 때 봤어요. 헉? 옛날에 좋은 회사 다니셨네요? 그렇죠 그렇쵸 맞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힘들어 하는 남편은 대답없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고,  나만 흔들리는 인형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과한 추임새를 넣었다.

내 리액션이 좋았던지 바깥사돈분은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신이 나서 이야기 하셨다.


술 취해 거나 해진 아버지와는 또다른 이유로 사위는 얼굴이 벌개져 고개를 자꾸만 숙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킬레스건이라 결혼 날짜를 잡고도 큰애에게 집안 사람들을 잘 보여 주지 않았던 사위는 화가 난 것도 같았다.

그런 오빠를 바라보며 큰애는 맛있는 것도 챙겨 주며 생긋생긋 이쁘게 웃었다.

 사위도 큰애 손을 꼭 잡았다.


술 한잔을 잘 못하면서도 맞춰 준다고 술 한 병을 다 먹어 취기로 벌개진  장래 장인 어른과

괜찮다고 연신 찡끗거리는 나를 보며 사위는 굳은 얼굴을 조금씩 풀었다.


"아 내가 정보사에서 복무했는데.. 정보사 그기 아무나 들어가는 게 아이라..."

세 병 째 술이 들어가자 이젠 거슬러거슬러 군복무 시절까지 가게 되었다.


"야야.. 일나자.. 느그 아부지 정보사 얘기 나왔다. 게임 오바다. 퍼뜩 가자.많이 취했다."


레퍼토리가 있는 것 같았다.

 정보사 얘기가 나오자 사위도 안사돈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바깥사돈을 사위는 연행하다시피 어깨에 둘러메고 밖을 나섰다.

"아 보소보소!!! 사진 사진을 찍어야지요. 거 직원분 우리 사진 좀 찍어주소."

시아버님은 흥도 많고 유쾌하신 분이었다.


그날 고개 숙인 사위가 계속 마음에 걸려 카톡을 했다.


"엄마"

"왜?"

"고마워."

"뭐가?"

"그..냥..다"


친구들에게 상견례 단체 사진을 보여 주니 부부들이 웃는 모습이 똑같단다. 애들도 너무 닮았단다.

오랜 세월 풍파를 같이 겪으면 부부가 닮아가나

안사돈분도 고생 많으셨겠네...

해맑게 활짝 웃으며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마냥 예뻤다. 부디 꼭 지금처럼만 ....


<이번 주 토요일이 아이들 결혼식이라 토욜 연재 약속을 못 지킬 것같아 미리 올립니다.양해바랍니다.>

이전 01화 1.요즘 결혼 이런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