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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Mar 08. 2024

결혼 선물? 생일 선물?

엄마 고맙지? 잘했지?

반백의 나이가 되니 생일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건 또 그거대로 섭섭해 생일 날만 되면 애들 손에 뭐가 들렸나 힐끔거려지기는 .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 애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어릴 때야 ' 엄마 사랑해 삐뚤삐뚤한 글씨로 올망졸망 써 내려간 카드 한장에도 과하게 감동하는 부모를 보며 소임을 다 했다 뿌듯해 했겠지만,어느 정도 아이 티를 벗고  돈을 버는 시점부터는 카드나 일일심부름권같은 티켓으로 퉁치기엔 좀 겸연쩍다. 그래서 이제는 이것저것 선물들을 사 온다.

매년 바르지도 않는 립스틱에 요상한 스카프를 선물로 받을 때도 딴에는 고민해서 사온 것일테니하고 고마움을 표했지만 반복되는 선물에 애들을 불러놓고 못 박았다.


"니들도 알다시피 엄만 이벤트 서프라이즈 이런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자기 취향에 맞는 선물 사 안기고 고마워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싫어.

엄마  생일이고 무슨 날이고 간에 무조건 니들 둘이 돈 모아서 금  돈짜리 해 줘"


 돈으로 받기에는 너무 계산적일 것 같고, 그런 거 안해줘도 된다고 손사레치면 나중에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무심해질까 나름 궁리해서 나온 해결책이었다.

저들도 엄마 아빠 선물 뭐 살까 고민하면서 내 화장품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 아예 대놓고 얘기하면 숙제 해결하는 거 같아 좋고 나도 하나씩 모으다보면 금테크같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정확히  현금을 요구했다.

6년 전인가 ?

결혼 자체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내가 뭐가 좋다고 결혼 기념일을 챙기겠는가 (사실 날짜도 잘 모른다.4월 중순 쯤인 거 같다)

매 년을 그냥 넘어 갔다.

그러다가 인간이 좀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돈을 벌어오는 걸 보고는 마음이 또 여려져  결혼기념달에  처음으로  금목걸이를 받고 싶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목걸이 이런 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나이 들어 자글자글거리는 목 주변을 보니 초라하고 보기 싫었다. 뭐라도 좀 번쩍거리는 걸 달면 나아보일 것 같았다.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 했더랬다.


 그런데 정말 일주일 후 금목걸이가 택배로 왔다. 내가 좋아하는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저 인간이 죽을 때가 됐나 뭔 일이래  욕하면서도 기분이 꿀렁꿀렁해 받자마자 걸고 다녔다.

남편이 인증샷 찍어보내라고 해서 목을 길게 빼고 인증샷을 보냈더니 번쩍번쩍 때깔난다고 남편밖에 없지? 으스대길레 사랑한다고 안 쓰던 이모티콘까지

써서  보냈더랬다.


퇴근하는 큰애에게 아빠가 미쳤나보다고 금목걸이를 보내왔다고 자랑을 해대니

나보다 더 아빠를 잘 아는 큰애가 아빠는 미치지도 않았고, 그럴 일도 없을 거라며 내가 끼고 있는 금목걸이를 사진을 찍더니 막내랑 둘이 방에 들어가서 한참 검색을 해댔다.


"봐 봐 그럴줄 알았어. 정가 2만원.. 세일 해서 만오천이네. 딱 봐도 도금이구만. 엄마는 그것도 몰라?"


내미는 핸드폰 속에 사진은 그날 하루종일 걸고 다닌 목걸이랑 똑같았다. 뭔 주얼리가게인데 어린 애들이 주로 이용하는 샵인듯 했다. 

금인지 도금인지 어떻게 아나?

 이상한 데서 좀 멍청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당연히 금목걸인 줄 알았다.

어째  목이 벌겋고 따금따금 근지럽더라니 ...   


우리 집에는 써글놈들이 왜 이리 많나 (하도 어이가 없어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니 문상 20만원이왔더라. 이 인간은 계륵이다.)


각설, 

 나도 속물이라 어쨌든 아이들 결혼 날짜 잡고 맞는 첫 생일이라 우리 섬세한 곰돌이 사위는 뭘 해주려나 은근히 기대가 됐더랬다.

지들끼리 돈 합쳐 금 한 돈을 ? 아니면 14k목걸이로?

아니지  백일 만난 기념일에 큰애에게 통 크게 금팔찌를 선물로 준 사위 스케일이면 뭐 좀 더 한걸로???

 아 아니다 기대하지 말자 부담주지 말자 아직 결혼식도 안 했는데.....

아니지, 그래도 내가 저놈 생일에 땀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남편보다 더 신경써서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 줬는데 요놈이 그래도 모른 체 할 놈은 아닌데.....


늦은 밤 과외를 마치고 오랜 시간 굳은 어깨와 목을 풀고 있는데 사위랑 큰애가 퇴근을 하고 같이 들어 왔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만 하고 내눈을 피하면서 큰애를 따라 방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후다닥닥 방을 들어왔다갔다  뭘 부시럭거리며 꺼내고 둘이 부산스러웠다

이놈들이 뭘 사 와서 저렇게 부산스럽나  씨익 웃었다.


"엄마, 생일 선물!!!! 오빠랑 내가 같이 했어!!

아주아주  비싼 거!!"


척 보기에도 각이 빳빳한게 아주 고급졌다. 딱 봐도 금목걸이나 금팔찌가 들어 있을 직사각형각이었다 .

짜식들.... 이쁜 것들...

야자 마치고 집에 온  막내도 시끌벅쩍한 소리에 방에서 나와 빼곰이 들여다봤다.


"......."

왜 금인데 노랗지가 않고 허옇지? 이건 뭐지? 인증서인가? 근데 왜 인증서에 글씨가 없고 사진이? 


"엄마 나 아기 가졌어! 잘 했지? 고맙지?우리 한 방에 됐다!!"

"장모님 죄송합니다"


하나도 안 죄송한 얼굴로 싱글벙글 좋아 죽는 사위를 보며 얼척이 없어 멍하니 봤다.

니들 결혼 전까지 손만 잡고 잔다며...

오빠가 자기 너무 귀하게 여겨 결혼 때까지 지켜 준다고 했다며...


아니다 내가 등신이다

어찌 27살 난 여자와 34살 난 남자가 2년 동안  손만 잡고 자겠나 그걸 믿은 내가 미친거지. 조선시대는 무슨 개뿔이 .. 

한방에 건강한 자신의 정자를 증명한 사위는 개선장군마냥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래도 내가 무서운지 그 큰 덩치를 구겨서 큰애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집에 써글놈 하나 더 추가요

                                                 <이걸 선물이라고 또 포장지에 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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