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티나인 Mar 15. 2024

결혼식 신부입장

한풀이

아이는 정말 예뻤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예뻤다.

희다못해 분홍빛이 도는 새하얀 피부는 비즈가 촘촘히 박힌 하얀 웨딩 드레스보다 더 하얘 결혼식장 도우미분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입덧으로 5키로가 빠진 턱선과 목덜미는 가냘프고 아름다웠다.

축하해주러 먼 거리를 오신 하객들이 신부가 어쩜 저리 예쁘냐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멋있는 턱시도를 입은 사위는  듬직해서 보기 좋다고  덕담을 해 주셨다. 


"자, 여러분 뒤를 봐주십시오. 아름다운 신부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신부 입장!!!!"

화촉을 밝히고 신부 혼주석에 앉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화촉 점화를 할 때도 활짝 웃으며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여유를 보였던 나는

큰애가 아빠의 손을 잡고 '어바웃타임 '노래에 맞춰 걸어오는데

눈물이 나올것 같아 눈에 힘을 꽉 주었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유쾌하고 즐겁게, 좋은날 질질 짜지 말자

 

큰애와 남편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서로 소닭보듯 무관심한 사이에 생전 잡지도 않은 손을 잡자니 남편과 큰애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지 둘다 얼굴을 이상하게 어그러뜨리고 있었다.


우렁찬 성혼 선언문이 끝나고 양가 아버지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남편이 성의 없이 대충 읽고 내려 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큰애주례를 없애고 대신에 양가 아버님의 축사를 하기로 사위랑 약속을 했다고 하니, 

가뜩이나 사회성 없는 남편이 그 많은 하객 앞에 서야 한다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신랑 아버님만 하면 안 되겠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큰애가 절대 안된다고 아빠도 같이 해야한다고

펄쩍 뛰었다.

남편은 귀찮은 기색을 역력히 보이며 축사 쓰기 싫으니 나보고 써 달라고 그대로 읽겠다고 했다.


진짜 너무하네....

딸래미 결혼식에 이렇게 심드렁하고 관심없는 아빠도 없을거다.

 하긴 큰애가 아기를 가졌다고 조심스레 말하니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 보더라

인간 참 안 변한다 ....


"안돼 .엄마가 쓰면 싫어."


"왜? 엄마가 진짜 감동적으로  써 줄게"


"싫어. 엄마 또 이상하게 쓸 거잖아. 막 책 내용이나 시같은 거 넣어서 ....그냥 내가 인터넷에서 보고 짜깁기 할거니까 엄만 빠져."


어떻게 알았지?

 머리에  책구절과  사랑의 시를 떠올리던 나는 아이의 칼차단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이는 인터넷에서 축사를 뒤지더니 그 중 무난한 것들을 조합해나가기 시작했다.


"응?그런데 마지막에 '사랑한다 우리딸 '이거 좀 위에 내용이랑 안 맞지 않아?"


"난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들어봤어. 결혼 전에 아빠한테 꼭 사랑한다는 말 듣고 결혼할테야."

유순한 아이가 그날따라 똑부러지게 말했다.

"........."


작은애에 대한 편애가 유독 심한 남편에게 내심 섭섭한 마음이 쌓인 큰애의 본심이 툭 튀어나온다.


또 각설하고 다시 결혼식장으로 돌아가, 

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았던 신랑아버님의 축사가 끝나자, 남편이 올라 갔다.


"안녕하십니까? 신부 아버지입니다.이렇게 저희 아이들의 결혼식에 와 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 그래도 나름 연습했나보네

 읽기 싫다고 투덜대던 것치고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읽어 나가는 남편을 보며 안심을 했다.


"큰애가 태어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커서 결혼을 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올커니 !그려 ...무난하고 뻔한 축사지만 어차피 하객들도 귀담아 듣지는 않을테니 실수만 하지 말고 내려오너라

그런데 ....

응?

엥?

왜 안 읽어? 뭐 하는거야?

고개를 들어 남편을 보니 한참을 말 없이 서 있었다.

 당황해서 잊어버렸나 고개를 빼고 보는데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마주보고 있어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는 아빠의 눈물에 어깨를 바르르 떨며 울고 있다.

남편은 목이 메어 몇번을 헛기침을 하며 읽다가 멈췄다.


아이가 태어나고 60일만에 27살의 어린 아빠는 우리 모녀가 버거웠는지 말도 없이 가출을 했다.

백일에도 돌에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 나홀로 사진을 찍고 잔치를 했다.

( 요 사연은 내가 이 인간이랑 이혼 안 하는 이유를 읽으신 분들은 다 아는 내용이니 패스)


큰애가 초등3학년 때 무슨 큰  실수를 했는데 참지 못한 남편이 벌간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아이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무서움으로 벌벌 떠는 아이를 뒤로 감추고 한 번만 더 아이에게 이런 손찌검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

반드시, 결단코, 이혼해버리겠다고 도끼눈을 하고 대들었다.

순간적으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자신에게 스스로 놀랐는지 남편도 가만히 있었다.(그후 한 번도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으나, 아이는 그때의 공포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등학교 6학년때  위클레스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그림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가 우리 집앞에 큰 사자를 그려 넣었다.

무슨 그림인지 물어보는 선생님께 사자가 있어서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아이가 말했다.

사자는 아빠라고 했다.


수학을 너무 못 하는 큰애에게 남편은 자기 방식대로 하면 수학 천재로 만들수 있다며 아이를 재우지도 않고 한달동안 새벽까지 수학공부를 시켰다. 가르쳐준 문제를 틀릴때마다 얼차례를 시키며 다시 풀렸다.

아무리해도 올라가지 않는 수학 점수를 보며 아이는 자신의 머리 나쁨을 죄악으로  여기고 자기는 바보라고 자기 머리를 자기손으로 탁탁 때리며 울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도 이 기회에 둘이 좀 사이가 돈독해지지 않을까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집으로 가면 아빠가 또 자신을 재우지 않고 수학공부를 시킬거라는 공포가  아이 그림에 고스란히 보였다.

 사자때문에 집으로 못 들어가는 입을 삐죽거리고 있는 작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의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진다는게 이런걸까 

정기적인 상담을 받으라는 위클래스 선생님의 조언을 뒤로 하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구세주인양 엄마 손을 놓지 않았다.

 그날 수학 교재들을 모두 버렸다.

남편에게 아이의 모든 공부에서 손을 떼라고 얘기했다. 고비를 넘기면 되는데 남의 말만 듣고,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남편은 화를 냈다. 

그날 크게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는 자유와 행복을 얻었다.


어리고 미숙한 아빠는 원하는대로 커주지 않는 아이를 보며 미워하고, 나에게 보란듯 의도적으로 방관했다.

영특하고 자기를 닮은 작은애가 태어나자 모든 사랑을 둘째에게 쏟아넣었다.

그런 아빠를 보며 큰애는  아빠를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비굴하게 한톨의 애정을 갈구했고, 인정 받고 싶어했다.

나의 적당한 중재로 겉으로는 평화로웠으나, 잘못된 부녀 관계는 깊은 골을 내며 찢어진 상처들을 꿰맬 줄 몰랐다.


그런 남편이 울고 있었다.

목이 메어 축사를 읽어 내려 가지 못했다.

나 혼자 치러낸 큰애의 돌잔치에 왔던 친구들이 하객의 절반인 결혼식장은 온통 눈물 바다였다.


"여러분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중단된 식순을 수습하려는 사회자의 에 하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열렬한 박수를 보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편은


 "사랑한다 우리딸 !!!"


식장이 떠나갈듯 큰소리를 지르며 하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흐느끼며 온몸을 떨며 우는 큰애를 사위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잡은 팔장을 토닥였다.


혼주석에서 그런 둘의 모습을 본 나는 속눈썹이 떨어질 정도로 눈물을 찍어 내면서도 기뻐서 또 울었다.

둘이 원없이 한을 풀고 가는구나

한바탕 신명나게 한풀이를 하는구나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주체없이 흐르는 눈물에 , 그의 숨겨진 여린 상처와 큰애에 대한 깊은 죄의식과  애증과 회피로 아이에게 까칠하게 굴었던,  

못나고 어설픈 사랑이  고스란히, 오롯이, 전부 내게 전해졌다.


 백일도 돌잔치에도 오지 못했던 돌아온 탕아는 자식이 크는 걸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때문인지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가 크는게 아까워 닳을까 발을 땅에 디디지도 못하고 언제나 안고 다녔다. 어린 아빠 품에서 도도한 공주님처럼 뻐기는 표정으로 안겨있던 7살짜리 여자아이는 다른 공주님의 출현으로 밀려나 상처받고 자라 사랑받았던 기억조차 소멸하고 말았다.

큰애는  늙은 아빠의 눈물로 자신을 끔찍히 사랑했던 아빠를 기억해냈고, 그의 말없는 사과를

이해하고 눈물로 화답하고 있었다.


다 풀고 가거라 못나고 못난 부모라  미안하다 아가야

 훨훨 날아가거라 어얼쑤 좋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손잡고 입장할 때 어색해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빠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입장할 때부터 울고 있었다고 큰애는 신혼여행 갔다 와서 얘기하며 또 울었다)





  <사위와 포옹하는 남편. 이때부터 계속 울고 있었단다>


막내의 상큼하고  눈물어린 축가까지 이어지자 결혼식장은 들썩였고 울면서도 끝까지 메에에 염소 소리를 내며 노래를 마친 어린 동생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 우는건지 노래를 부르는건지 >




"내가 여러 결혼식에 가봤지만, 이런 감동적인 결혼식은 처음 봅니다."

"아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부었어. 우리 남편은 안경까지 벗고 울더라."

"진짜 결혼식다운 결혼식이었어."

"야! 니 신랑 울 때 사람들 다 울었어."

"막내 우는데 너무 귀여워서 울다 웃었어,"


예식을 마치고 나가는 하객들이 너무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고 좋은 결혼식이라고 너 잘 살았다고 벌개진 눈으로 내 등을 쓸어주셨다.

등에 닿은 손길이 너무 따뜻해 울어버렸다.


깊숙히 숨겨둔 ,작지만 무거웠던  돌덩이들이 잘게잘게 부수어져 내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없이 후련하고 후련한 결혼식이었다.


그 후 남편과 큰애는 결혼식 때 쏟아냈던 눈물에 대해서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의 대화가 많아진것도 아니었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둘의 표정이 한없이 부드럽고 편안했다.


나는 그 후 이 인간이라 하지 않고,

써글놈이라고도 하지 않고,

남편이라 칭한다

                    

이전 07화 입덧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