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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Mar 24. 2024

신혼여행선물

나의 호구들 

"어머님, 그래도 라텍스는 진짜 안 샀습니다. 그건 열심히 피했습니다."


어이없어 하는 내 표정에 사위는 눈치를 슬슬보며  아래로 눈을 내리깔고 딴에는 변명이라고 이렇게  말한다.

내 앞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로얄젤리와 뭔 미백효과가 뛰어나다는 진주가루 화장품과 딱딱하게 굳어 아무리 흔들어도 나오지 않는 코코넛 오일 100% 가 펼쳐져 있었다.


잘 먹지도 않는 말린 코코넛 과일은 그래도 동남아 갔다오면 하나씩 사들고 오는 부담 없는 물건이라 신혼여행 갔다온 애들이 몇 봉지를 안겨 줬을 땐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애들  가방에서 뭐가 하나씩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건 뭐니?"

"예, 어머님 진주가루라는 건데 이게 미백 잡티에도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아니, 케이 뷰티가 활개를 치는  마당에 어디 제품인줄도 모르는 진주가루 화장품을 도대체 왜 사온 걸까 


"이거 얼만데?"

"아 엄마, 묻지마 이거 엄청 비싼거야"

그니까 이런 걸 왜 사왔냐고..


큰애의 입덧이 절정이라 먹는 족족 토하는 마당에,  그래도 한 번밖에 없는 신혼여행이라고 꾸역꾸역 가방을 챙기는 아이들에게 안 가면 안 되겠냐고 말리고 싶었지만 다 큰애들이 알아서 결정한 걸 괜히 장모가 개입하는 건 지나친 월권 같아 속타는 마음은 묻어두고 조심해서 갔다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처음에는 포르투칼로 일정을 잡다가 큰애의 상태가 너무 안좋아 서둘러 가까운 태국으로 변경을 하고 최고급 리조트를 예약해서 거기서만 내내 있다가 올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 여기 너무 좋아 천국이야."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큰애는 너무 좋다고 목소리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 와중에 어디서 커플티를 맞췄는지 쌍으로 입고 지들끼리 좋아 죽었다. 

속깊은 사위는 매일 동영상과 화상 통화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렸고, 무사귀환을 악속했다.



신혼여행을 갔다오자마자 쉬라는 내 만류에도 그 다음날 애들은 우리집으로 왔다. 

좋은 솜씨도 아니건만 그래도 내가 해준 음식은 잘 토하지 않은 아이가 태국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며 호박전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서둘러 갓 지은 밥과 호박전을 부쳐주고,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했더랬다.

과일까지 실컷 먹고 이제 느긋하게 신혼여행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카오락은 좋았는데 푸켓은 별로였다는 둥, 대마를 정말 많이 피우더라는 둥, 트랜스젠더 쇼가 신기했다는 둥 몇 가지 썰을 풀다가 선물이라고 가방에서 뭐를 계속 꺼내 놓았다.

요고는 몸에 좋다는 로얄젤리, 요고는 미백에 좋다는 진주가루, 요고는 튼살에 직빵이라는 코코넛오일 ..

누가 좋다고 하더냐고 되물으니 가이드 실장님이 그랬단다.

그래서 얼마냐고 하니 말을 못한다. 

가만히 쳐다보니 간덩이가 약한 사위가 내 눈이 무서웠는지 이실직고한다.


"요고 한통에 12만원이라고 합니다. 근데 이거 진짜 좋다고 합니다. "

속깊고  눈치는 없는 사위는 

"근데 어머님 이게 속은 거 같습니다. 당근에서 보니 3만원짜리도 있었습니다.성분이 다르겠지요?"


제발 다르다고 해달라는 간절한 눈빛에 그래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토닥여주었다.

그래 잘했다. 뭐 이런 것도 다 경험이지 괜찮다 괜찮아 

해외여행 한번도 안 가본 놈들이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그래 몇개를 샀는데?

8통을 샀단다. 뭐 이런 미친.... 야 이 호구들아 ....


이 로얄제리는 뭐니?

"네 어머님. 가이드 실장님이 이거 먹으면 진짜 좋답니다. 완전 100%로 로얄젤리인데 매일 한 숟가락 떠먹으면 피로회복도 좋고 뭐 다 좋답니다."

아니 굴지의 대기업에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온갖 영양제를 만들어 내는 데 뭔 로얄젤리냐 어디제품인데?

"예? 아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암튼 다 사 간답니다."

얼마냐고 묻지도 않았다. 속이 터질것 같아서...

이건 도대체 몇 통을 샀을까 ...  아니..묻지 말자...


코코넛오일을 살펴보던 사위는 급기야 울 것 같이 당황했다.

"어? 이거 왜 안나오지? "

거기서는 물흐르듯 퐁퐁 나왔단다. 허옇게 굳은 오일 밑바닥을 손바닥으로 치고, 돌리고 하더니 인터넷을 찾아 본다.

"아 어머님. 이게 잘못된 게 아니랍니다. 동남아랑 날씨가 달라서 여기 오면 이렇게 고체로 굳는답니다. 

따뜻한 물에 담그면 다시 액체로 변합답니다."


그러고는 컵에 따뜻한 물을 받아와서 둘이 녹이고 생쇼를 한다.

"오!! 녹습니다. 다행이지요? 이건 안 속은 거 같습니다."

그래 이놈의 오일을 바르겠다고 매일 매일  따뜻한 물에 녹여서 소중하게 쓰도록 하마 

한숨이 터지려는 걸 참고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이거 다 사는데 얼마 들었는데?"

말은 안하고 둘이 서로 눈치만 본다. 

"아 엄마는 그런 거 왜 물어 봐? 그냥 써!"

"얼마야?"

거짓말도 잘 못하는 사위는 내눈치 큰애 눈치를 번갈아 보다가 작게 말했다.

"예 어머님 270만원쯤 들었습니다. 아 근데 진짜 억울합니다. 이게 저희가 헷갈리게 이중으로 계산을 합니다. 저흰 바트로 생각했는데 그걸 또 다시 달러로 계산하고 암튼 좀 복잡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나는 너희가 무섭다. 이놈들아 

그들이야 당연히 생계수단이니 악착같이 그들의 직업정신을 발휘한 거고 다 큰 성인이 알아서 정신차리고 걸러야지 그걸 홀랑 다 사냐.. 너 대기업 어떻게 들어갔니?

가이드 실장님의 무슨 감동적인 이야기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사위를 보자니 이젠 숫제 겁이 났다. 이놈들 사기맞기 딱이네.


사위가 시무룩해서 말했다.

"거기가 대마 합법이잖습니까 사람들이 대마를 정말 많이 피웁니다. 제가 대마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았나봅니다. 뭐에 홀린 것 같습니다."

한심하게 쳐다보는 내가 야속했는지 굳세고 해맑게 항변한다.

"그래도 저희는 라텍스 파는데서는 실장님이 뭐라고 해도 굳건히 안 샀습니다. 저희랑 일행이었던 신혼부부들 다 라텍스 하나씩 공항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들이 이겼단다. 또랑또랑한 오빠가 자랑스러운 지 큰애도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뭘 이긴 거라는 건지... 

에효, 이 호구들아... 

< 문제의 진주 가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까워 바른다. 코코넛 오일은 매번 데우기 귀찮아 그냥 이쑤시게로 후벼 파서 대충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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