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유
약속 시간 5분 전에 칼같이 약속 장소에 가고, 학교에 제출할 서류건, 문서건 기간이 정해진 날짜보다 훨씬 전에 보내 담당자가 어떻게 그 많은 걸 며칠만에 다 정리하셨냐고 놀라워 하며,3개월 간 쓴 글쓰기 수업에 단 하루도 미루지 않아 골든상까지 받은 제가 브런치연재를 몇주를 펑크를 냈습니다.
무언가 보내야할 서류나 자료가 있으면 강박적으로 그 걸 끝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불안증이 있는 제가 무언의 약속을 몇 주나 어기고 결국은 오늘 연재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몇 주를 노트북에 앉았다 브런치스토리에 접속하고도 멍하니 보다가 노트북을 밀어내길 여러 번입니다.
쓰려고 앉으면 갑자기 막막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잘 된 글이든, 그렇지 않은 글이든 쓰는 거 자체를 어려워하지 않는 제가 눈만 뻐끔뻐금하며 글을 쓰기 어려워졌던 이유는 큰애의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엄마, 오빠가 엄마 글 어디에 썼는지 알아내서 다 읽어 본다. 오늘도 엄마 글 읽더라."
제가 브런치에 글을 몇 편을 올려도 생전가야 보지 않는 아이들과 브런치 스토리가 뭔지도 모르는 남편덕분에 마음대로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 애들욕 남편욕 시도때도 없이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사위가 제 글을 읽는다고 하니 순간 움찔거려졌습니다. (제 주변 어느 누구도 제가 브런치 글 쓰는 걸 알지 못합니다. 너무 편합니다.)
혹시 내가 저쪽 사돈댁 욕을 한 게 있었나, 사위에게 섭섭한 말을 한 건 있나,
속깊고 착한 사위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저희들의 결혼 스토리를 읽기야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들의 스토리를 쓴 저는 도둑 제발 저리는 심정으로 자체 검증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글쓰기를 주저주저 하게 됐습니다.
눈치를 보는 글이 솔직해질리가 없고, 정제된 글이 진실되기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연재를 마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결혼과정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결국은 결혼을 다 끝낸 아이들의 생활을 굳이 더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신 과정, 출산 과정 뭐 등등 있겠지만 제가 연재를 시작했던 목적과는 부합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 째는 막내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엄마, 나는 엄마 아빠보고 지긋지긋해서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했거든?
근데 오빠랑(16살 차이나는 형부가 막내는 어색한지 오빠라고 불렀다) 언니보니까 저렇게 알콩달콩사는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입덧이 서서히 걷히면서 먹고 싶은 게 많아진 큰애는 결혼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수시로 우리집에 들락거렸습니다.
덩달아 사위도 자주 집에 왔는데 서로 배를 쓰다듬어 주며 키득키득 좋아죽는걸 보고 작은애는 눈을 개슴츠레 뜨며 저러고 싶나 쯧쯧거리다가도 애들이 가고 나면 무심히 툭툭 내뱉었습니다.
막내의 말을 들으며, 이제 연재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소임을 다했다는 느낌....
'그 후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내며 영원한 해피엔딩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요
제 이야기를 쓸 때는 구독자가 한자리 수를 차지 하더니, 아이의 결혼 스토리를 쓰자 구독자가 두자리수로 늘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늙은 중년의 도전보다는 결혼이 흥미진진한 소재였나봅니다.
처음으로 순위에도 올라보고, 58명이라는 제겐 너무 놀라운 두자리 수를 만들어 주신 구독자 분들께 마지막 마무리 감사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몇 자 적습니다.
감사하고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엄마 나 결혼할래'는 이번 회차로 마무리 합니다.
소임을 다 한 저는 또 춤바람에 빠져 탱고를 배우는 중입니다.
탱고 스토리는 다른 작품 속에서 또 뵙겠습니다.
늦은 연재 죄송하고 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