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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Apr 06. 2024
태몽
아들일까 딸일까
서양문화권
에서는 태몽
자체를 이해할 수도 없고 비과학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에서는 태몽을 꾸는 사람도 많아 임신 소식을 들으면 태몽이 뭐였냐고 묻곤 한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십 년 전에는 병원에서 성별을 알려 주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해서 태몽으로 성별을 추측하고 확신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16주만 되면 병원에서 성별을 알려준다니, 세상의 격세지감에 놀라곤 한다.
태몽을 꾸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우리 일가는 3대에 걸쳐 태몽을 꾸었고 성별도 거의 비슷하게 맞히는 편이었다.
친정 엄마는 우리 세자매의 태몽을 확실히 기억하신다고 했다.
언니나 동생은 대체로 꽃이나 작은 과일 꿈을
꾸셨다고
했고, 나는 큰 가물치 뒤로 수많은 작은 가물치들이 졸졸 따라 오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그래서 니가 평생 애들 가르치며 살아가는갑따"
내 태몽을 얘기하면 으레 따라 나오는 엄마의 말씀이다.
뭐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억지로 끼워맞추기 식이라도 어쨌든 태몽은 꾼 사람들에게 기이하고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한다.
나는 큰애와 작은애의
꿈을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큰에의 꿈은 까만 고양이였다.
꿈에서 자고 있는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깨어, 살짝
현관
문을 여니 새까만 고양이 둘이 낑낑거리며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지나가는 개나 고양이에게도 눈길 한 번 잘 안 주는 성격이다 보니 두 마리의 고양이가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하얗고 몽글몽글 작은 고양이도 아니고
새까맣고 큰 고양이는 무서움까지 더 해져 보자마자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다 갔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며시 문을 여니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는 멀찌감치서 고개를 모로 꼬며 서운한 눈빚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머지 한마리는 어디갔나 두리번 거리는데 문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한 마리가 잽싸게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야!!
소리를 꽥 지르며 잠에서 깼다.
인터넷이 있지도 않은 때라 이런 태몽들은 대게 어른들에게 해몽을 구하는 편이라
엄마께 여쭤보니 딸 태몽이란다.
"에고, 둘째도 딸이겠네. 도망간 그 고양이. 그기 다시 또 올거라. 그기 또 딸이다."
딸 셋을 내리낳고 장남인 아빠께 심하게 구박을 받았던 엄마는 아직 낳지도 않은 둘째가 또 딸이라고 개탄을 하셨다.
예지몽인지 엄마 말씀대로 딸을 둘 낳고 보니 태몽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의 태몽은 돌고래였다.
9년만에 둘째가 뱃속에 들어서기 세 달 전
꿈에서 리본을
맨
돌고래가 내
아킬
레스건을 꽉 물고 놔 주지 않았다.
발을 계속 탈탈 털어도 질질 끌리면서 악착같이 따라오는 돌고래가 너무 귀엽고
,
영리한
그
눈망울이 예뻐 그대로 놔 두었다.
태어나서 동물 꿈을 한 번도 꾸지 않던 내가 고양이 꿈을 꾸고 큰애를 가져서 이번에도 태몽이라 생각했다.
내 태몽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갓 결혼한 동생에게 아기 생겼냐고 물었다.
자매들이 태몽을 대신 꿔주기도 해서 나는 동생의 태몽을 대신 꾸었다 생각했다.
그게 둘째의 태몽이었다. 내심 아들을 바랐던 남편은 리본을 두르고 있었다는 내 태몽을 흘려듣고 돌고래는 아들이라고 우겼다.
나역시 큰애가 딸이라 둘째는 아들이길 바랐지만, 리본을 달고 있는 돌고래 꿈에 마음을 접었었다.
아이들은 태몽대로 자라 주었다.
보은의 동물이라는 고양이 꿈을 꾼 큰애는 살면서 내내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며 장녀의 역할을 톡톡히 했고,
돌고래
꿈을 꾼
둘째는 영리하고 다재다능해서 키우는 맛이 있었다.
그래서 큰애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친정 엄마의 예지력을 물려 받은 내가 당연히 태몽을 꿀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 보니 둘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예, 어머님 꿈에서 간호사가 나와서 아기를 안겨주며 '딸입니다' 했습니다. 딸인 거 같습니다."
딸을 원하는 사위의 마음이 투영 됐는지는 몰라도 그런 꿈을 꾸었단다.
"엄마, 나는 꿈에서 작은 뱀이 나왔어. 딸같아."
뱀띠가 싫어 청룡띠를 가지고 싶어 속도위반을 한 큰애의 태몽이 뱀꿈이라니 어이없기도 했다.
결혼식 하기 전에는 민망한 마음에 아기 소식을 알리지 않다가 아이들이 신혼여행을 다녀 오고 나서는 양가 어른들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예상외로 양가 어른들께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셨다
알고 있으셨단다.
"우리 손녀딸이 신랑될 사람이랑 인사왔을 때 그날 아침에 느그 시아버지가 밥 먹으면서 집채만한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다고 하더라
태몽 꿈인데 느그 시아버지가 모르시더라. 그래서 우리 손녀 아기 가졌구나 알고 있었다. 아들이네"
하셨다.
친정 엄마와 마찬가지로 남다른 예지몽이 있는 시어머님의 말씀이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손녀딸 단속 단단히 시키라고 매번 잔소리를 해댔던 친정 엄마께 혼전임신 얘기를 하자니 또 한 바탕 난리가 나겠다 생각했다.
" 그래. 그게 태몽이구나 혹시나 했다."
친정 엄마는 태어나 그런 꿈은 처음 꿔 봤다고 하셨다.
"내가 길을 가고 있는데 누가 창고같은 커다란 곳에서 부르길레 갔더니, 세상에 무슨 반짝반짝하고 깨끗하고
커다란 무를 문에서 막 넘겨 주더라고.. 받으면 또 주고 받으면 또 주고 .. 흙에서 막 건졌는데 어찌 그리
깨끗
하고 반짝이던지.. 산처럼 무더기로 받았니라..
근데 이 번에는 또 감자를 막 캐서 주는데 그건 또 얼마나 주먹
만
하던지..
깨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아들이네 "
꿈이 너무 좋다고 사라고 하셨다. 둘째 가졌을 때도 좋은 꿈을 꾸셨다고 해서 엄마께 점심을 사드리고 만원을 드리며 꿈을 샀었다. 그때는 아들이라는 얘기는 안 하셨는데 이번에는 아들이라고 확신하셨다.
세월이 20년이 흐른지라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5만원을 드렸다.
"훠이 내 꿈 사가라.. 팔았다."
하셨다.
계산은 확실해야 해서 놀러온 사위랑 큰애에게 5만원 내놓으라고 했다. 내 태몽도 아니고 너희 아이들 태몽이니 너희들이 지불하는 게 맞지 않냐고 ...
애들은 아들꿈이라는 말에 찝찝해 하며 안 사려고 했다.
아들이건 딸이건 어른들이 꾼 좋은 꿈이니 사야한다고 했다.
큰애는 핸드폰 케이스에 숨겨둔 오만원을 투덜거리며 내게 주었다.
"훠이 나도 꿈 팔았다. 너희들이 샀다. "
건강하고 훌륭한 아이를 낳기를 ... 무사 순산을 기원하며 큰애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을 사니 , 돈을 주니, 난리 법석을 떠는 우리를 보는
작은애는
구석기 시대의 미개인을 보는
눈빛으로 얼척없어했다.
토요일에 성별 결과가 나온다는 아이들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 없었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예, 어머님 의사 선생님께서 '중간에 뭐가 보이죠? ' 했습니다."
사위와 딸은 어른들의 예지몽에 감탄하는 모양이었다.
막내야, 우리는 미개인이 아니란다.
뭐 말하자면
이건 하나의 의식인거야. 태어나는 아이를 축복하는 어른들의
예식이고 정결한
의식인거지
.
큰애야, 사위,,,
어른들은 예지몽을 꾸는 예언자들도 아니란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강건하고,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생은 괴롭고 외롭지만, 또 한 빛나고 찬란하다는 것을 ..
그리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어른들의 소망이 꿈이라는 매개물로 발현된 것뿐이란다.
태어나는 나의 귀하고 귀한 손자..
네가 평생을 행복하고 무탈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혹여 힘들고 모진 풍파에 다치는 일이 있더라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너의 탄생은
많은
어른들의 기원과 축원과 간절함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걸....
하여, 네 삶은, 네 모든 생은 ...아름답고 충만하고 더없이 행복하고 사랑으로 가득차길............
어른들이 모두 먼 길을 떠나갈지라도 그분들을 언제나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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