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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Mar 23. 2024

축의금/ 하객들

얼마면 될까/ 누구를 부를까

고민이 되었다.

모바일 청첩장을 어느선까지 보내야할까


가까이 살고 지속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꼭 와야한다고 협박같은 다짐을 받으면서도 허물이 없었지만

일년동안 소식도 없던 사람들에게 뜬금없이 보내는것도 속보이는 짓같고 , 친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지인에게도 이걸 보내는게 맞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모바일 청첩장 끝에 나온 점잖은 말로 '마음을 전할 곳'이라 읽고 돈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 계좌번호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종이로 된 청첩장이 대세기도 했고, 대부분 직접 와서 방명록에 아무개씨 왔습니다 하고 그 자리에서 축의금을 전달했는데 요즘에는 모바일 청첩장에  신랑신부  부모님들 계좌, 신랑신부 개인 계좌번호까지 떡하니 찍혀 각자 하객들의 축의금은 알아서 챙기게 되니 참 합리적이라고 해야할지 개인적이라고 해야할지 ...


직접 오시는 분들이야 마주보고 인사도 하고 우리 아이 결혼식도 보고, 음식도 먹으며 덕담도 나눌 수도 있지만, 몸이 불편해 오실수도 없는 일가 친척분들과 생전 얼굴도 뵙지 못 한 시댁 어른들, 멀리 사는 애매한 지인들에게 계좌번호가 들어있는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다는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속 모르는 남편은 자기는 올 친구가 한 명밖에 없으니 세상 편하다고 자신이 자발적 아웃사이더라 자랑스레 말했지만, 예식장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한  200인분의 뷔페값(인원이 차든 안차든 고정으로 나가는 값)에 올 사람이 너무 없어 나혼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렇다고 머릿수 채우느라 불편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까지 와주십사 하기는 송구스런 일이었다.

괜히 북쩍거릴 사위측 하객들에게 스산한 우리측 빈자리가 눈에 띄일 것 같아 창피스럽기도 했었다.


어느선까지 보내야지 불쾌하지 않고 뜬금없지 않을까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앞으로도 이들과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가

그들의 자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타인에게 들었을때 섭섭한 마음이 드는가

그들 부모의 장례식에 마음을 전하거나 갈수 있는가

로 정리했다.


그래, 하객이 100명인들 어떻고, 30명인들 어떠랴

뷔페 인원 못 채우면 오신 분들께 식사도 대접하고 답례품 더 드리면 되지 뭐...

진심으로 우리 아이 결혼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시는 그런 분들만 와서 아이 앞날을 응원하주시면 되는거지.


포항에 살 때는 더러 만나기도 하고 아이를 맡길데가 없으면 급하게 부탁하기도 했던 먼 친척 오빠가 인천으로 이사간 뒤에 7년 정도 연락을 하지 못 했다.

그 사이 오빠의 둘째딸이 결혼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내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조금 섭섭했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알 것 같았다.

먼 거리에 오지도 못하고, 몇년을 연락도 안했는데 아이 결혼이라고 생뚱맞게 청첩장을 보내기가  깔끔한 오빠 성정에 말하기가 힘들었을테다.

멀리 이사가 오래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집 대소사에 언제나 발벗고 나서 주시고 아쉬울 때마다 큰애를 맡겨오고, 오빠 아들 결혼식에 큰애까지 데리고 서울을 갔었는데, 나중에 오빠가 큰애 결혼했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 전해 들으면 섭섭해 하실 것 같았다.

망설이다 오빠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대번에 전화가 와서 그런 큰일을 왜 이제야 얘기하냐고

나중에 알게 되면 섭섭할뻔 했다고 너무 멀어 가지는 못하나 성의 표시하고 싶다고 하셨다.

오랜 시간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 번을 하지 못했는데 조심스런 문자에 선뜻 전화까지 해서 야단을 치시니 고맙고 죄송했다.

 

십 년을 만났지만, 아주 가끔 만나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나서 집에 오면 뒤꼭지가 당기는, 괜히 만났다 뒤끝이 개운하지 못한 동네 지인들과 친구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만나도 어제 본 것 같이 수다스럽고, 내 가정사를 낱낱이 공개해도 뒤에 무슨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꼭 오라고 남편들도 끌고 오라고 하객 없다고 징징댔다.

(걱정과 달리 진짜 하객들이 많이 왔다. 멋쩍어 가기 싫다던 남편들을 다들 끌고 왔고, 애들까지 데리고 와서 자리를 꽉꽉 채워 주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는 자기돈을 내고 대타를 구해 놓고 급하게 왔다.)

 

서로의 대화 방식이 달라 상처만 입고 결국은 단톡방을 나와 다시 보지 않는 오래된 모임이 있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괜히 우리 사이에서 힘들어 했던 그 모임의 한 친구에게는 따로 연락을 했다.

다른 친구들 아이들 결혼식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 친구의 아이 결혼식은 가고 싶었다.

나만 빼고 그 그룹의 친구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의 눈치가 보일까 연락하지 않다가 결혼식 전날  전화를 했다.

친구는 펄쩍 뛰며 왜 이제 전화했냐고 화를 내고, 모바일 청첩장 꼭 보내라고 성화를 부렸다.


 캐나다 사는 후배와 미국 사는 친구에게는 청첩장이 나오자마자 바로 보냈다.  그들 부모의 부고소식에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멀리 있어 부모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그들을 대신에 내가 장례식을 지켰다)


질질 끌고 왔던 애매한 인간관계들이 하객들을 기준으로 명확히 정리 되고 있었다.


한풀이로 후련했던 결혼식이 끝나고 어느 정도 밖으로 나간 혼이 머리에 다시 들어 왔을 때, 축의금 명단을 확인 했다.


돈이란게 참 이상했다.

내가 속물적이라 그런지 돈도 그 사람의 마음이고 정성이라 생각하는 내 사고 방식 때문인지

없는 형편에 과하게 축의금을 보낸 친구들에게는 더 고맙고 마음이 짠했다.

이건 허세가 아니었다. 피같은 노동력과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그들의 사랑이고 정성이었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내 생각때문인지 지랄같은 내 성격에 몇명 남지 않은 내 친구들의 대소사에, 시댁이나 친정에,무슨 일이 생기면  내 형편보다 아주 조금은 무리해서 돈을 넣는 편이다.  오랜 세월 살아 보니 그렇게 한 돈들은 어떤식으로든 다 돌려받더라.)


그들의 정성과 마음은 확인했으니, 아이 결혼식으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받고 어려운 형편에 부담스럽게 축의금을 낸  친구들에게는 차비 명목으로 반이상을 돌려 주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있는대로 당겨 쓰고 있는 동생이 100만원 거금을 축의금으로 보내와 60만원을 봉투에 넣어 서울 갈 차비하라고 쥐어줬다.


서울에서 살 때 우리 빌라 밑에 반지하에 살던 친한 동생이 큰애 결혼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 와 주었다. 하객들이 얼마 없다는 내 걱정에 딸까지 데려 와 자리를 채워 주었다.

월세에 주말 알바를 하는 형편인 걸 뻔히 아는데 20만원이나 축의금을 내고 갔다.

 차비하라고 30만원 넣어 보냈다.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축의금만 보낸 분들이나, 바쁘다고 식사도 안 하고 그냥 가신 분들에게는 5만원권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드렸다.

형편이 넉넉하신 분들은 감사 인사만 드리고, 나중에 식사 한 번 하자고 문자 보냈다.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일일히 한분한분 다 문자로 드렸다. 아이 결혼식으로 정신 없을 텐데 뭘 이런것까지  챙기냐고 하시면서도 다들 기뻐하셨다.


결국 반이상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돌려 주니 남은 축의금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이돈으로 나중에 아이들 시댁갈때 거하게 신행음식을 보낼 수도 있었고, 아이 산달 다가올 때 산후조리원비를 조금 보태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다 빚이라고 꼬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십시일반 모인 돈이 가난한 살림에는 큰 보탬이 되었다.


그래서 누굴 부르고, 얼마를 넣어야하느냐고?

마음이 편한 쪽이 정답이다. 이 친구나 이분을 불렀을 때 내 마음이 편하고 좋은지 이 액수를 넣었을 때 찜찜하고 마음이 불편한지, 이만큼 넣으니 아 그래 잘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지  ....


오랜 세월 쌓아온 내 경험의 수치들이 촉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길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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