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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Mar 09. 2024

입덧

엄마는 박수무당

웨에에엑 웨엑!!

또 시작이다 .

"엄마 죽을 것 같아."

"안죽어"

"나 미칠것 같아."

"안 미쳐"


입덧을 시작한 큰애는 하루종일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하도 토를 많이 하니 목구멍이 아프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쿨하다 못해 차가운 엄마 태도에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럴줄 몰랐냐 ..내 말 안 듣더니 잘 한다.

살짝 얄미운 구석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째 친정 엄마가 아기 가진 딸한테 얄밉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인간성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변명을 하자면,


예식장을 잡고 온 날부터 주말마다 사위집에서 자고 오는 큰애를 붙잡고 얘기했었다.


" 다 큰 성인인 너희들한테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개입하는건 싫지만 피임은 제대로 해.

 유치원도 올해까지 다니겠다고 계약서도 쓰고, 신혼여행도 가야하는데 덜컥 아이 가지면 여행지 가서 칵테일 한 잔도 못 마시고 신혼도 즐기지 못하고 제약이 많아. 

신혼여행가서 허니문 베이비 만들어도 되니까 조심해야 해."


"아 걱정하지마. 엄마 우리 그런거 안 해. 오빠는 밑에서 자고 난 침대에서 자. 우리 진짜 손만 잡고 자."


24살까지  제대로 된 연애도 안해 본 순진한 아이라 곧이 곧대로 믿었다.

사위도 나이답지 않게 순정파라 큰애가 싫다면 강요할 성정은 아니었다(라고 믿는 내가 참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고자도 아닌데 다 큰 성인이 손만 잡고 자겠냐 살짝 의심도 했지만, 그래도 조심은 하겠지 믿었더랬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묘한 말을 했다(요게 소설로 치자면  복선이었는데 그때는 뭔 뜬금없는 얘긴가 싶었다)


"엄마 나 올해 아기 가지면 안 돼?"


"그래. 사위 나이도 있으니 결혼하고 아기 가지도록 노력해 봐"


"아니 지금 가지면 안 돼?"


"지금?그럼 결혼식 준비하면서 힘들어서 안 돼. 배도 불러오고 신혼여행도 힘들어서 못 가. 입덧 시작하면 죽음이야. 유치원은 어떻게 하고? 올해까지 해준다고 선생님도 안 구했다며 지금 가지면 너도 힘들고 많은 사람들 민폐야."


아이는 말을 안하고 손을 꼼지락 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꾸물거리는 아이를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올해 꼭 가져야하는 이유를 말해봐."


"난 꼭 용띠해 아이를 낳고 싶단 말이야 내년에는 뱀띠해라서 난 뱀띠 싫어 징그러워."


"????!!!!!"


하......도대체 얘는 어느 시대에서 온 아이일까

이 글로벌한 세상에 뱀띠가 싫어 용띠를 갖고 싶어 속도 위반을 하겠다고?


문제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한 나는 이런 감상적인 이유로 인생에 크나 큰 출산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아이는 오감과 촉이 발달해 눈치도 빠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빨리 파악해 사회 생활은 잘 하지만 어떤 문제에 부닥칠 때 논리보다는 자신의 감성으로 결정 할 때가 많다.


말 못 할 다른 이유가 있는 지 궁금했다.

혹시 지금 임신을 한 건 아닌지, 사위가 빨리 갖자고 성화를 부리는 건지, 이래저래 아이랑 많은 얘기를 했는데 이유는 진짜 단 한 가지 뱀띠가 싫어서란다.

청룡의 해에 아이를 가지고 싶단다.

뭐 이런....


그럼 결혼식이 2월이니 허니문 베이비 만들면 청룡띠를 가질 수 있으니 조금만 미루라고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허니문 베이비 안 생기면 어떡해? 요즘 난임도 많다는데 내 친구도 6번이나 시도 했는데 실패했대."


"그건 다른 사람 얘기고, 딸은 엄마 닮는대.엄마는 아이가 잘 생기는 체질이야. 너도 엄마 닮아서 한방에 생길거야.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


그리고 하루종일 검색해서 뱀띠 아이가 얼마나 영특하고 좋은 띠인지를 아이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줬다 .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엄마 말 대로 할게. 사실 오빠도 내년에 갖자고 하는데 내가 막 우겼어."

그렇게 둘이서 합의를 본 게 허니문 베이비를 공략하자는 거였다.

나도 안심했다. 이게 합리적이고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한달 후 아기를 가졌다는 폭탄 발언을 한 거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뭐 둘의 2세 문제에 엄마가 저리 개입을 하나 본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 엄마가 너무 간섭하는 게 아닌가 불편해 하실 분들이 계실 수도 있다.


실제로 큰애와 둘도 없는 친구인 큰애의 이모이자 내 동생은 아이의 임신소식에 꺅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

너무너무 축하한다고, 이모가 너무 행복해서 주책없이 눈물이 쏟아진다고 ...

그러면서 시큰둥한 내 모습에 언니는 좋은 소식에 왜 초를 치냐고 나를 나무랐다.

나도 이모면 꺅 소리치며 울어줄 수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

유치원에 메인 교사인 큰애가 빠지면 거짓말 좀 보태서 유치원이 휘청 거릴 정도였다. 그래서 큰애의 결혼 소식을 들은 원장쌤도 임신여부를 조심스레 물었고, 큰애는 내년에 갖겠다는 말로 원장쌤을 안심시켰다.

2년 연속 담임을 맡고 있는 큰애가 또 연임으로 자신들의 아이들을 맡아 준다는 말에 학부모님들은  안심하고 재원을 약속했다.

아이의 임신 소식에 원장쌤은 크게 당황해서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며  대타 선생님을 구하러 뛰어 다녔다.


그 와중에 큰애는 입덧으로 살이 5킬로나 빠졌고 사위는 거금의 위약금을 물고 신혼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동분서주 바빴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나는 아이가 결혼 전에 아기를 갖는걸 극구 반대했었던 거다.

 이 첨단의학 시대에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일을 몇 달을 못 참아 이렇게 복잡하고 얽히고 설키게 만든 놈들이 마냥 잘했다 이쁘다 할 수 없는 게 친정 엄마인 나의 입장이었다.


내가 박수무당도 아니건만 신기가 들렸는지 모든 일이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 원장쌤께서 출산휴가 준다고 나 아이 낳고 바로 나올 수 있냐는데 엄마가 우리 애 봐주면 안 돼?"


뭐라는 거야? 미쳤어? 나 일하는 사람인거 몰라?내가 너보다 더 많이 벌어! 어이가 없었다.


" 어머님한테 그러면 안 돼. 어머님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둘이 속닥속닥 한다

" 그러지마. 어머님은 우리 최후의 보류야."

"괜찮아 .우리 엄마 츤데렐라야. 말만 못 되게 하지 우리 얘기 다 들어 줘..."

다 들린다 이 써글 ... 아니 아기 가졌지 좋은 말 좋은 말 이 시베리안 허스 .... 아니 착한말 착한말



"엄마 죽을거 같아. 나 호박전 먹으면 살 것 같아 호박전 좀 해주면 안 돼?"


냄새가 역해서 한끼도 못 먹었다는 큰애는 퇴근 후 퀭하고 불쌍한 눈으로 하루종일 과외로 시달린 내게 칭얼거렸다.

욕을 하며 호박전을 부치는데 또 신기가 내렸는지 아기를 업은 내 모습과 퇴근 후 사위와 큰애가 우리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물럿거라 훠이 훠이 잡귀야 물럿거라 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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