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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01. 2023

교사도 아프다

물 위에 떠 있는 나무통을 본 적이 있는가? 물 위에 있으면서도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하늘로 날아가지 못한다. 그저 주변의 환경에 따라 방향이 바뀌고, 흐름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나무통은 결국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떠돌기만 할 뿐이다.     

혹시 당신은 나무통과 같은 사람이 아닌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 어정쩡하게 자리 한 채 만족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쉽지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만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담임으로, 또 한 교실의 과목 교사로 아이들과 마주하며 3월 초 꿈꾸었던 목표나 지향점은 어느새 퇴색되고 미래보다는 어제와 같은 오늘에 메인 채 끌려가는 느낌이 가득하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행복할 수 없다고 다짐하며 최대한 상쾌한 마음으로 출근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이른 아침 ‘학교 못 가요.’라는 아이의 예의 없는 문자를 확인하면 하루의 시작이 흔들린다.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여 전화를 하지만 아이는 받지도 않고, 아이와 연락이 안 되니,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지만, 아이가 지각과 결석을 반복해도 무관심하거나 문제 개선에 대해 협력하지 않는 학부모와의 대화는 그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1교시 수업 시간, 시작도 하기 전에 자는 아이를 애써 깨우지만, 아이의 얼굴에 그려진 짜증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교사의 마음에는 또 하나의 상처가 소리 없이 쌓인다.      

아이들 탓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교사는 더 무기력해진다. 내가 수업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사 관점으로는 1분 1초도 아까운 시간이라 느껴지지만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의 나열일 뿐이다.      

자기 목표나 꿈이 이미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에 학교에 오는 이유나 의미도 없이 몸만 오고 가는 아이들의 무거운 발걸음, 혹은 그마저도 거부해 등교하지 않는 아이를 설득할 뚜렷한 명분도 논리도 쉽게 떠오르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학교에 나온 아이도 밖에서 보이는 멀쩡한 외양과는 달리 상처투성인 아이의 내면과 마주해야 할 때면 가르치는 자가 아닌 돌봄의 역할로서의 교사라는 자리가 버겁기도 하다.     

시험이, 졸업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보지만 받아들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의 몸짓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회의감뿐이다.     

다시 한번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공허한 나만의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방법을 찾으려 몸부림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에너지를 주는 존재다. 태양이 그러하듯이 교사는 학생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비추고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멘토여야 한다. 그러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에게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교사가 위치한 교실 환경은 그런 역할을 해내기에 녹록하지 않다. 배움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만들어낸 무기력은 교사에게도 전염된다. 열정이 이미 사라진 교실, 교사에게 가장 소중한 수업이 아이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가간다는 사실을 알 때 교사는 그 무엇보다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기는 고민을 해소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대치 속에 교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여야 한다. 가르치는 실력이 부족해도 안 되고 아이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도 안 되고 심지어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존재이다. 수업에 생활지도에 행정 업무에 힘들다고 목소리 높이면 ‘그것 하라고 교사하는 것 아닌가?’라는 냉정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 흔히 내놓은 조언도 ‘더 잘해 봐’이다. 학생을 대할 때나 수업을 할 때 ‘더 열심히 잘하면 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해결책을 몰라서 그런 상황에 놓이는 교사는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교사 내면에 무너진 자존감의 상처만 깊이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쌓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혼자만 겪고 있지 않다는 사실의 인식이다. 나만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다소 회복할 수 있다. 나아가 동료 교사들 간의 위로와 격려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면 문제 해결에 조금 진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생활지도와 같이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 단계 더 점진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무엇인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내가 지닌 작은 장점에도 칭찬해 주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초점 맞추기보다는 스스로 작은 격려를 통해 자기감정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혹은 다 해결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자. 전지전능한 능력도 없으면서 교사니까 학생의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교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끌려다니지 말고 견디고 일어서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수업 중에 만나게 되는 한 아이의 살아 있는 눈빛에 힘을 얻고 가시적인 큰 성과보다는 작은 변화가 주는 의미에 초점 맞추어 가는 길 속에 치유와 회복이 있음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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