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8일.
나는 수업 첫날 내가 느꼈던 점들을 'WSA 와인 아카데미 내돈내산 솔직 후기 : 우는 아이에게 떡을 주면 안 된다(ft. WSET)'라는 다소 신랄한 평가를 내린 바가 있다.
오늘은 첫 후기를 남긴 이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수업의 중반부를 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수업 중간 후기와 WSET level2 시험 공부 방법에 대해서 내 나름의 생각들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수업의 중반부까지 들은 시점에서 내가 느낀 점을 딱 한 줄로 요약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대략 40명쯤 되는 인원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WSA 와인 아카데미는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듣는 느낌으로 수업이 진행한다. 커다란 화면에 PPT 자료를 띄우고 와인 전문가이신 선생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신다.
선생님들마다 수업을 하시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지금은 최선주 선생님이 아니다)의 경우 전반적인 내용을 체계적으로 딱딱 정리해주시기보다는 와인이라는 큰 범위 안에서 개괄적으로 설명하시는 편이다.
이러한 수업의 경우, 장점과 단점이 굉장히 명확하다.
장점은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 듣지 못하는 와인 산업 분야에 대한 스토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을 들을 때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수업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리고 선생님의 의식의 흐름대로 설명을 하시다보니 나중에 복습할 때 수업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이것을 왜 단점으로 여기느냐 하면, 와인을 처음 공부하는 초보자의 경우 와인이라는 학문의 각 카테고리별 핵심적인 뼈대가 없다. 뼈대가 없이 살을 주구장창 붙여봤자 중심축이 없는데 어떻게 체계적으로, 탄탄하게 지식을 쌓을 수 있겠는가?
와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지금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초보자일 경우 혼자서 뼈대를 세워야 한다는 단점이 명확하기에 '체계적으로 뼈대를 세워주는 수업'을 선호한다면 이 수업은 마냥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아닐 것이다.
나의 경우 2회차 때 잠시 강의해주셨던 최선주 선생님께서 3시간 수업 동안 와인 분야 전반의 개괄적인 뼈대를 잡아주고 가셨고, 클래스101에서 <국가대표 소믈리에가 알려주는 와인의 모든 것> 강의를 병행해서 들었기 때문에 이후 수업을 수월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2가지가 없었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와린이 입장에서 WSET를 공부하는데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와인 공부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미리 와인과 관련된 책 몇 권 정도는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책은 「한국인을 위한 슬기로운 와인 생활(이지선)」이다. 처음 접하는 분야일수록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와인은 어렵지 않아(오펠리 네만)」나 「와인 폴리(Madeline Puckette, Justin Hammack)」과 같은 유형의 책들은 굳이 비유하자면 수학의 정석 같은 느낌이다. 단편적인 지식들을 제공하는 책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둘째치고,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왕초보라면 이런 책보다는 「한국인을 위한 슬기로운 와인 생활(이지선)」을 추천한다. 이것도 지루하다면 「와인 :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신지민)」과 같은 와인 에세이를 읽는 것도 방법이다.
총 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수업 중 와인 시음 활동은 30분~1시간 정도 이루어진다. 첫 수업 때 지적했던 사항들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40명을 대상으로 1분의 선생님이 와인 시음까지 가르쳐주고 계셔서 개별적인 피드백에는 한계가 있다.
개별적인 피드백이 힘들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냥 맨 앞에 앉는 거다. 맨 앞에 앉아서 와인 시음을 할 때 틀리든, 틀리지 않든 상관 없이 계속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다. 어차피 내가 틀리건, 틀리지 않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계속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고쳐야 할 점들을 이야기해주신다. 그럼 그때 '아하', 하고 감을 잡고 고쳐나가는 거다.
다만 여기서 전제는 WSET level2 수준의 SAT(와인 시음의 체계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와인 테이스팅을 처음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신경 써야 한다. WSET level2에서는 시음 평가를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객관식 시험 내용에는 SAT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WSA 와인 아카데미 수업을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는 '동문 문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WSA 와인 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내 생각을 블로그에 옮기면서 블로그 이웃님 겸 동문님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장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속한 기수들의 경우 그리 결속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적어도 현재까진 그랬다). 이게 기수별로 차이가 있다고는 하는데 저번 주에 있었던 동문 모임 분위기(각개전투 느낌이랄까)로 봐서 추후 추가적인 만남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장(기수장)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기수 모임 때 마셨던 와인들 중 맛있었던 와인들
왼쪽 와인(발비 소프라니 아스티)은
당도가 높진 않은데 산뜻하게 마실 수 있고
저렴한 가격대에 홈플러스에 가면 거의 항상 구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와인 입문용으로 딱이다)
오른쪽 와인(로저구라트 브뤼 리제르바 2019)이
스페인 까바계의 돔페리뇽(ver.저렴이)이라고 한다
실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돔페리뇽을 이겼다고...0_0
(맛있긴 진짜 맛있었다)
여담이지만 우리 기수에는 수업을 취미로 듣는 분들도 계시지만 주류 회사에만 17년 근무하신 분도 계시고, 5성급 호텔에서 호텔리어, 쉐프 등으로 활약하시거나 자체적으로 와인바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았다. 참고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라!
WSA 와인 아카데미에서 WSET 시험 공부를 하며 내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학창시절부터 내 요약 노트는 인기쟁이었다.
예쁜 손글씨로 정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방대한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맥락의 흐름이 이해가 되도록 잘 정리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생님 농담까지 그대로 적기 때문에 공부 내용을 복기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런 학창 시절의 경력이 WSA 와인 아카데미에서 WSET를 공부하는데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WSET level2의 내용은 분명 기초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시험 범위가 굉장히 넓다.
더군다나 선생님께서 설명은 자세하게 하셔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시는 역할을 하진 않으신다(뼈대를 안 잡아주신다니까). 그럼 방법은 하나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한 토시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필기한 다음, 내 언어로 구조화하는 것이다.
수업을 들으러 가면 학원측에서는 그날 배울 수업 내용에 관한 프린트를 제공한다. 선생님께서도 이 프린트를 기본으로 해서 진도를 나가신다. 문제는 이 프린트에서 시험이 출제되는 것이 아니라 WSET level2 교재에서 출제가 된다는 거다.
선생님께서 수업하시기는 이런 방식이 편하겠지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2가지 자료를 동시에 봐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방식이 WSA 와인 아카데미의 유구한 수업 방식인 것을.
'이게 나만 그런 건가?' 싶어서 WSET level2 시험 후기들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의 선배님들께서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 수업을 듣는 내내는 필기와 요약 정리에 충실하되, 시험 직전까지 핵심 내용을 달달 암기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시점에서 내 생각에 WSET level2 시험의 핵심은 1) 단권화, 2) 핵심 요소 암기, 3) 교재 읽기 무한 반복이다. 수업을 듣는 내내는 교재와 프린트를 1) 단권화만 해도 내 생각엔 충분하다. 나처럼 베이스가 없는 사람은 이것도 쉽지가 않다.
단권화를 끝내면 무턱대고 책을 암기하려고 하지 말고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부분들과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핵심을 타격해야 한다. 그냥 무턱대고 외우기에는 시험 내용이 정말 방대하다.
아,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설명 안 하신 부분은 보지 말라는 건 아니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다보니,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 정도는 알고 있지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는 부분들이 좀 많다(ex 프랑스 부르고뉴 AOC 체계, 지리적 표시, 와인 시음과 음식과의 조화 등).
이럴 때는 또 방법이 없다.
그냥 본인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WSET 교재를 바탕으로 참고 서적(앞의 추천 도서 참고)을 들여다보면서 공부해야지 별 수 있겠는가?(이쯤 되면 WSA 와인 아카데미는 자기주도학습의 선구주자가 아닌가 하는, 다소 불손한 생각을 해본다)
WSET 시험이 지엽적으로 문제를 출제하는 편이라 큰 틀을 잡고 나서 디테일을 교재 읽기 무한 반복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으로 보인다. 진짜 대학 전공 시험 볼 때랑 다를 게 없다.
어쩌다보니 다소 또 내용이 신랄해지긴 했는데 현재까지 WSA 와인 아카데미 수업에 대한 내 평가는 5점 만점에 4점 정도는 된다(미약하게 0.1점 상승함(첫날 평가 : 3.9점)).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이렇게 기록해두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어본다.
더불어 내가 '수업을 즐기고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즐기고 있다'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이야기를 떠나 나는 정말 와인을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면 블로그나 브런치에 와인 이야기를 적을 리가 없다. 내 성격에 '굳이' 싫은 것을 억지로 글로 쓰진 않는다. 진짜 싫으면 내가 굳이 와인 에세이를 쓰는 걸 목표로 잡진 않았을 거다.
와인이 그만큼 내게 주는 영감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모처럼 만에 대학 다니는 느낌으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와인 공부 자체를 즐기면서 하고 있다. 포도라는 작은 식물이 아름다운 와인으로 탈바꿈하는 일련의 과정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인간의 삶과 비슷해서 몹시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혹시 취미용으로 와인을 공부하고 싶거나, WSET(국제와인자격증)를 취득할 목적으로 WSA 와인 아카데미를 다니고 싶다면, 현재 시점에서 '꽤 괜찮은 선택을 하셨네요' 정도는 이야기해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