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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en 나봄 Jul 21. 2023

네츄럴 와인은 '완벽한 포도'로 만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한다는 것"(ft. 아들러 심리학)

"여러분은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예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집단 상담을 주관해주신 상담 선생님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는 1학년을 대상으로 과별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무료로 1회 운영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단 상담실에 감성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몇몇 여자 친구들은 서로의 손을 부여잡으며 '선생님 덕분에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거 같아요.'라고 상담 선생님을 찬양했다. 내 맞은 편의 감수성 풍부한 남자 친구들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저 스스로를 더 사랑할게요!감사해요, 선생님~!@Queen 나봄 친구들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우에 잔뜩 젖어 바들바들 떠는 새앙쥐들마냥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세요!'를 외치는 선생님을 흠모하는 가운데 나는 홀로 의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

맨날 게임하고, 드라마보느라

학점 관리, 아르바이트도 안 하면서


조별 과제 때 무임승차하는 

놈들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건

현상 유지를 해도 된다는 소린데


그 사랑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단 상담 전에 조별 과제 무임승차를 시도하려던 놈들을 조용히 응징한 Queen 나봄 입장

(이래서 직전 상황이 중요한가보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의 맥락과 의미가 내 질문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촉촉한 감성에 젖어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저런 질문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한다는 것', 이 말이 정말 타당한 이야기인지, 오랫동안 의문이었다.










A의 상태가 누가 봐도 안 좋아.

(약물 중독, 빚쟁이, 폭력범, 

정서불안, 기타 등등의 문제로 가정한다)

그런데 본인은 본인 상태가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주변인들은 이런 상태의 A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해. 사람들은 점점 A에게서 멀어져. 


소통의 부재로 A는 외로움을 느끼겠지.

A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이 상태의 A는 정말 행복할까?

이게 진짜 자기 사랑인 걸까?

@Queen 나봄(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를 사고 실험의 전제로 한다)




모든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행복에 대한 전제는 '건강과 행복, 삶의 만족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질의 사회적 관계'이다. 



출처 : 아트인사이트




쉽게 생각하자. 

우리는 사람 간의 문제가 생길 때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지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있을 때는 자존감을 찾진 않는다. 




"개인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써만 측정될 수 있다(프리드니히 니체)"



이 말에 근거해서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5명의 평균이 곧 나의 가치다'라는 표현이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의하는 자존감의 의미는 <타인과 당당하게 존중과 예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힘>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런 거죠^^출처 : 오르비




인간이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은 '도덕'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쉽게 말해 있는 그대로의 본성-식욕, 성욕, 수면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회에서 약속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준다는 거다. 



상대에게 예의, 예절(사회에서 약속한 모습)을 보여주는데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다. 내가 피곤하다고 해도 상대에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때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생각하는 '무례함'을 범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는 무례한 사람을 <진상>이라고 표현하죠



예의와 예절을 지키지 않았을 때 결과는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진다. 각 개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이기에 '나'를 희생해 가면서 상대의 무례를 굳이 참아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수준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생각하는 수준보다 높을까? 끼리끼리는 'science(과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이 개념을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아들러 심리학(우리나라에서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통해 소개됐다)'의 <알프레드 아들러>다. 




출처 : 뉴스1




아들러가 이야기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지극히 본능적인 나의 모습 ]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할 수 있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본능적인 내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남들은 사랑해주는 것이 옳다'라는 말은 아무런 학술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개념을 처음 주장한 아들러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사람을 만날 때 '가면'을 쓰고 자신을 포장하는 것은 가식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출처 : moccona.co.kr




어느 날 부인이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보, 이제 난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고 싶어. 그래서 날 속박하는 회사와 가정으로부터 탈출한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거기까진 OK.

그런데 회사를 관둔 다음 날부터 부인은 집안일은 고사하고 집안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시커먼 빨래가 줄줄이 쌓여있고, 싱크대에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출처 : Freepik



아내는 머리도 감지 않고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은 상태로 넷플릭스 채널을 돌려보며 감자칩만 먹는다. 츄리닝 사이로 며칠 사이에  퉁퉁하게 올라온 뱃살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애기는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데 밥은 챙겨줄 생각도 없다.

감히 묻고 싶다. 

'부인'이라는 사회적 가면이 없는, 이 본능적인 상태를 정말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가? 










성인이 되면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다양한 역할을 부여 받는다. 회사의 직원 혹은 사장, 누군가의 아들, 딸, 부인, 남편, 어머니, 아버지, 친구. 각 개인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인간은 1000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칼 구스타프 융




칼 융은 이런 '사회적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페르소나는 '나를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분리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녹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 에듀넷




부모님께 다정한 딸의 모습, 냉철하게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직원의 모습,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다정한 친구, 새롭게 도전하는 피앙세을 응원하는 연인의 모습. 모두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인 것이다. 

사회적 가면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과정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본능을 조율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의 무게감 견디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도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좌절하는 그때,

'노력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출처 : 핀과 제이크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절을 맛 봤을 때, '괜찮아! 다시 도전해보자!'라고 일으켜 세울 줄 아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건강한 방식이 아닐까? 









요즘은 '네츄럴 와인'이 와인 시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학적인 비료나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양조하는 것이 요즘 대중들이 요구하는 네츄럴 와인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출처 : 스몰 비지니스 트렌드




쉽게 말해 '유기농 와인'을 만든다는 거다.

유기농 와인을 빚기 위해서는 비료 하나 치지 않은, 유기농 포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농부들은 유기농 포도를 키우기 위해 포도밭을 있는 그대로, 자연 상태로 내버려둘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포도의 상태를 확인하며 천연 비료를 개발해야 하고, 잡초 하나하나를 손수 뽑고, 상해버린 포도알을 제거해야 한다. 




출처 : 뉴시스




어줍잖게 포도송이가 많을 때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고, 해충이 포도밭에 기승을 부릴 때는 해충을 박멸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농부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완벽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완벽한 포도'를 재배하진 못한다.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가 생길 수도 있고, 포도밭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금전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늘(天), 땅(地), 사람의 노력(人).

건강한 포도를 키워내기 위해 이 3박자가 맞아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완벽'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극히 드물 것이며, 매번 '완벽'이라는 지위는 새로운 도전자들에 의해 위협 받을 것이다. 




출처 : 자이언트펭TV



그렇기에 와인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유기농을 좋아한다고 해서 밭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이라는 기준에 가깝게 포도를 최선을 다해 키워낼 따름이다




"자기실현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분석심리학)"




분석심리학자들은 완전한 인간(vollkommener mensch)보다는 온전한 인간(Vollstanding mensch)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여기서 온전한 인간은 '최고가 아니라 본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을 지향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태고적 본능으로 해석한다면 나 스스로 성장 한계선을 그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이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출처 : 기독신문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기실현이라는 노력을 했음에도 부족할 수 있는 나'라고 이해했을 때는 내게 성장 한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채워서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루하루 포도를 관찰하고 관리하며 <온전한 포도>를 길러내고자 하는 농부의 다정한 시선과 닮았다.  








누군가 여왕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여왕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상위 몇 퍼센트의 삶을

말로 떠들 시간에

날 어제보다 Better than하게

만들 행동을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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