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은 뭐 해 먹고살지?” 방송에서 연출이나 대본이 좋다고 해도 제일 중요한 건 아이템이다. 물론 어떤 아이템은 손만 대도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지만 거의 드물다. 대부분은 원석처럼 널브러져 있을 때가 태반이다.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다뤄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지가 방송의 기본이다. 문제는 시간. 원석을 깎아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넉넉하니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줘도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면 매일 방송은? 그냥 “매일이 전쟁”이다. 매일매일 방송을 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나의 관심사는 온통 사건사고다.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하고 있는데도 익숙해지지도 않고 힘든 내용들이 여전히 많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영화나 소설보다 더 끔찍하고, 더 잔혹하고, 더 암담하다. 아이템을 고르기 위해서 가리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CCTV를 자주 보는데 그야말로 기막히다. 액션 영화에서 나쁜 놈들은 생긴 것부터 딱 나쁘게 생겼다. 그러나 실제 CCTV에 포착된 가해자들은 진짜 평범하게 생긴 경우가 훨씬 많다. 더 무서운 건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현장을 빠져나와 거리를 걷는 가해자들이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군중 사이를 걷는 그들, 범죄자들은 그렇게 우리들 틈에 스며들고 있다. 요즘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 ‘먹튀’. 먹튀범들 역시 얼마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는지 웬만한 배우보다 낫다. 나는 범죄자들의 신상 공개를 찬성한다. 수십 년 전에 찍은 주민등록증 사진이 아닌, 외국처럼 머그샷 같이 지금의 모습 그대로를 공개하는 것에 찬성한다. 가해자의 인권을 위해서라지만, 인권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배려와 자비는 필요 없다.
“지금부터 오늘 아이템을 정해볼까?” 책상 위에 놓여있는 판결문들, 그리고 막 업데이트된 사건사고 기사들을 읽는다. 어느 부위에 흉기로 몇 번을, 어떤 식으로 찔렀는지 자세하게 나온 판결문을 읽은 날, 종일 속이 편치 않다.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중학생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를 보다, 울면서 원고를 쓴다. 아동학대로 죽어간 어린아이들, 고통스러웠을 마지막 길에 마음 한편이 쓰리다. 길냥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인간의 뻔뻔한 모습을 보면, 내 고양이를 꼭 안아준다. 수없이 절도를 저지르고도 촉법이라며 큰소리치는 10대 아이들, 어떤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일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계모와 친부에 의해 학대받다 죽은 12살 시우. 어두운 방에 의자에 묶여 있던 아이가 아주 잠깐 고개를 들어 CCTV를 힐끗 보는 모습은 하루 종일 눈앞에 맴돈다. 내 앞에 놓인 사건사고들 중 함께 공분하고,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그러니까 이야기가 있을 만한 원석이 오늘 방송 후보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다루지?” 상의 끝에 골라낸 아이템을 다룰 때는 더 신중해진다. 나오는 기사대로 다 받아쓰진 않는다. 해당 경찰서나 검사실, 공보판사실에 전화를 걸어 확인부터 해본다. “아직 수사 중이라 자세한 건 말 못 해줘요.” “판결문에 있는 게 다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그나마 취재로, 기사로 나온 부분들 중 시청자들이 불편해할 만한 것들은 순화시키고 덜어낸다. 자세한 범행 수법은 다루지 않는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최대한 가린다. 프로그램 성격상 공분 포인트는 하나씩 넣으려 하지만 대신 너무 몰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현실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번 걸러지는 것이고, 그게 연출진의 몫이다. 마음 같아선 다 까발리고 이런 놈을 내버려 두겠습니까 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만, 현실은 가해자의 인권도 존중해줘야 하는 분위기다.
“하아.. 힘들었지만 오늘도 무사히 끝났네.” 오늘 방송도 별 탈 없이 끝났다. 내가 의도한 공분 포인트에 시청자들이 공감해 주고 호응해 주고 같이 분노해 주면 보람을 느낀다. 방송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힘이 난다. 가능한 한 그날 다룬 사건사고는 빨리 잊어버리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오늘 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나의 눈은 내일의 원석을 찾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