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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현장 잡설 2

뒤늦은 자존감

by 정작가 Sep 25. 2023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달이 보인다.
해에 가려 숨죽여있지만, 형태는 또렷하다.  

요즘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한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두어 시간이나 일찍 나가는데도 겨우겨우 생방송 시간을 맞춘다. 한숨과 욕이 절로 나온다. 몸 곳곳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은 뻑뻑하고 목소리는 잠기고 속은 헛헛하다.
 
몹시 힘들다. 몹시 지친다. 몹시 아프다.

그런데 몹시 재밌다. 고생하는 만큼 수치가 나오고, 이슈가 되고, 덕분이란 말도 듣는다. 무엇보다 구성하고, 대본 쓰는 일이  재밌다. 제보나 사건사고 하나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고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몹시 재밌다.
 
나 방송작가하길 잘했구나, 나 방송글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나 방송글을 잘  쓰는구나...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데,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중이다. 작가일을 오래 했지만 늘 변변찮은 작가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존감이 생기다니...
언제까지 이 기분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은 누리고 싶다.

해에 가려 있지만, 그래도 제 할 일을 하는 달.. 꼭 나 같아서, 헛소리 한번 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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