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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의 암 투병기 2

by 정작가 Oct 06. 2023

“나 좀 나가게 해 줘.”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공기는 몹시 차가웠고,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속은 마구 울렁거렸다. 수술 직후 대기하는 회복실이었다. 옆 침대 노인 하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젓고 있었다. 수술 한 왼쪽 가슴에 손을 갖다 댄다.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불쑥 이 말이 나왔다. 손을 대보니 부분 절제를 한 듯했고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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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제일 쉬웠어요.” 유방암 환자 카페에 가보면 다들 이렇게 말했다. 맞다. 수술 직후 6시간 동안 물도 못 마시게 하고, 잠도 못 자게 하는 것 빼곤 다 참을만했다. 입원실로 돌아와 보니 비어있던 옆 침대에 새 환자가 와있다. 나보다는 훨씬 연배가 있어 보였는데 모든 것이 능숙해 보였다. 모자를 벗으니 민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주머니는 낯 가리는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난 27번째 항암을 위해 입원하는 거라우. 하고 나면 죽을 맛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수. 내게 맞는 항암약이 있다는 걸로도 감사해야지. 앞으로 항암하면 더 많이 힘들 테니까 그때까지 잘 먹고 버텨 봐요.”  2박 3일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그리워했던 딸냥이가 옆에 와 몸을 갖다 댄다. 불과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녀석의 온기를 빼놓고는 뭔가 낯설다. 비로소 내가 암 환자란 사실이 와닿았다. 퇴원한 바로 다음 날, 난 다시 출근했다. 난 암 환자가 되었는데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암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데 이 녀석이 항암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참 애매해요. 그러니 환자가 항암 할지를 결정하시죠.” 의사는 나의 결정을 기다렸다. 조직 검사 결과, 내가 갖고 있던 암 녀석은 여성 호르몬 수치가 높아서 생긴 것이었다. 그러면 왜 수치가 높아진 걸까? 그건 의사도 모른단다. 그러면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무엇보다 나 같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는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항암 치료 하겠습니다.”  


“항암 하면 일을 쉬어야 할까요?” “아뇨. 저는 환자가 일하는 것을 권해요. 항암 하며 일하면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오히려 우울증에 걸리기 쉽거든요.” 암 판정을 받고 입원과 수술을 거치면서 계속 일을 할 것 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다행히 3일 만에 퇴원했지만, 항암은 또 다른 문제였다. 유방암 환우 카페에 들어가 보니 온갖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글이 다수였다. 그래서 휴학, 휴직을 하고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아예 요양 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걸 선택했다. 6개월은 짧으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매일 방송에선 긴 시간이다. 더군다나 나는 프리랜서다. 휴직이나 병가란 있을 수 없는 일. 일을 그만두거나 계속하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나 혼자 일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저, 6개월 동안 한 달에 두 번만 일찍 가도 될까요?” 우리 팀 전체를 총괄하는 부장님 앞에서 어렵게 입을 떼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컸지만 안 된다고 하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뜻밖에도 부장님은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주었다. 오히려 힘들면 얘기하라고, 재택 해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말하라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부장의 말은 두고두고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암 환자인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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