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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26. 2024

아날로그 여행자의 준비물


디지털 시스템의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감성만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라고 자부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뱅킹과 전자메일을 사용하면서도, 책은 종이로 봐야 한다는 그런 류의 사람인 것이다. 일상에선 뭐든 빠르고 정확한 게 좋지만, 여행에서 만큼은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오래 걸려도 괜찮다 싶다. 오히려 어떨 때는 그런 게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AI, 로봇,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 용어도 생소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속에서도 아직 없어지지 않은 옛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종이로 된 지도이다. 지도가 정확히 언제 처음 발명되어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대항해 시대 이전에도 지도는 있었고, 조선후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도는 존재한다.


특별히 지리 수업을 좋아하거나 지도를 보는 일에 관심이 있진 않았다. 그러나 내 손엔 지도가 들려 있었고, 나는 지도를 펼쳐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생각이나 의도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호텔 로비, 관광지, 안내소 등 곳곳에 지도가 놓여 있던 탓에 쉽게 눈이 갔고, 무료인 데다 언어에 대한 선택지도 제공되니 자연스레 손이 갔다.




아날로그 여행자답게 스마트폰의 데이터 기능은 꺼져있고 일행도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건 지도를 보는 일이다. 한껏 펼쳐놓고 보니 도시의 생김을 알겠다. 아무리 높은 전망대에 올라간다 해도 이렇게 도시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종이 한 장에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담겨 있었다.


이제 지도는 나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이다. 오늘도 나는 한 손엔 온 세상을, 또 다른 한 손엔 구글맵을 들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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