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 니혼바시(日本橋)에 있는 카네코한노스케 본점으로 향했다. 도쿄의 텐동 명소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일부러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전략이 조금은 통했는지 익히 듣던 엄청난 인파는 아니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장 끝으로 가서 서니 줄 세우기 담당 직원이 다가와 검은색 우산을 건네왔다. 바로 7월 한낮의 도쿄 뙤약볕에서 나를 지켜줄 작지만 소중한 무기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가게 바로 앞 차양 밑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았고, 무더위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따라 마실 시원한 물도 준비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 손엔 양산인지 우산인지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금방일 것 같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어져만 가고 있었고, 양산의 역할을 하는 그것의 손잡이는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도쿄의 태양을 막아 주기엔 한없이 역부족이기만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그냥 갈까?’ 생각하며 돌아본 내 뒤를 잇따르는 사람들의 땀에 절은 얼굴과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 그리고 무기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내 발목을 잡았던 검은색 물체는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시간이 넘었을까, 드디어 차양 밑으로 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고지가 머지않았다는 사실이 기쁘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갑자기 무언가 큰 형체가 나를 스친 뒤 정확히 내 발 위로 떨어졌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존재가 말이다.
그 정체는 바로 사람이었고, 한 여성이었다. 내 뒤엔 앳되어 보이는 일본인 커플이 서 있었는데, 그중 여자친구가 결국 도쿄의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고, 나는 발 위에 놓인 무게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으며, 쓰러진 여성의 남자친구 역시 내 앞에 주저앉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애타게 여자친구에게 말을 걸어보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타의로 눕는 대신 자의로 앉는 걸 택할 수 있을 정도로 금세 정신을 차렸고, 덩달아 내 발도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찜통 같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게 얼어붙었던 이 짧은 찰나의 순간,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첫 장면에 등장한 뒤 잊혀 가고 있던 줄 세우기 담당 직원이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근처에 있는 자판기로 달려가 자비로 시원한 생수 한 통을 뽑아왔고,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더러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소름 돋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직원도 역시 우리와 내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게 앞 행렬에 합류하기 위해 속속 도착하는 손님들에겐 양산 내지 우산을 건네고, 목적지로 향하는 줄의 선두부터 마지막까지 차례차례 앞으로 이동시키면서 말이다. 이마저도 내게는 한 발 한 발 줄어드는 기다림이었지만, 그에게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내 다음 차례였던 그 커플은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아니, 애초 30도 중반을 웃도는 도쿄의 여름 날씨에 야외에서 몇 시간씩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었다. 나 역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인데 그날은 더위에 홀려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았나 싶다. 긴 기다림 끝에 들어선 가게 안은 좌석 수가 생각보다 더 적었다. 이제야 나의 착각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왜 눈앞에 보이는 웨이팅 수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지.
갓 튀긴 붕장어와 새우, 오징어 등에 화룡정점으로 특제 소스가 어우러진 텐동은 그 명성만큼 충분히 맛있었다. 다만, 말 그대로 떨어지다시피 쓰러진 그녀가 생각나 고생 끝에 주어진 먹는 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물론 당사자의 마음이 제일 힘들겠지만, 바로 앞에서 목격한 나 역시도 충격을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깐. 끝내 입맛이 사라져 버린 나는 나름 대식가라 자부함에도 다 먹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눈에 담은 경험은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도쿄의 여름이고, 그날 입에 담은 것은 분명 다시 찾아 즐기고 싶은 맛이다. 기절할 맛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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