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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2. 2024

뉴욕여행을 팝니다

뉴욕찬가

처음으로 팔 추억은 브런치북을 꾸미는 사진 속 주인공 뉴욕여행이 되시겠다. 이 사진은 내가 뉴욕에 도착하고 숙소에 집을 놓고 나와 찍은 첫 사진이다. 어딜 봐도 내가 생각한 뉴욕이라 믿기지 않으면서도 입꼬리는 하루종일 중력을 가뿐히 무시했다.

나의 뉴욕에 대한 사랑은 무한도전 뉴욕 특집을 보고 시작되었다.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큰 공원, 수많은 인파, 화려한 네온사인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광장. 무엇보다 오래된 건축 양식의 높은 건물들이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래된 건물은 높아봤자 5층 내외일 거라는 나의 편견을 비웃듯 우뚝 솟아오른 그 건물들이 내게 주는 인지부조화가 흥미로웠다. 저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란 말이지?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어느 해 여름, 페이스북에서 뮤지컬 라이온킹의 circle of life 영상을 우연히 봤다. 뮤지컬이 있는 건 알았지만 무대 영상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프리카의 아침을 여는 라피키의 노래와 무대 기법으로 재탄생한 동물들을 보자마자 심장에 그 영상이 꽂혔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아침과 심바의 돌잔치를 이렇게 무대 위에 재현시키다니 볼 때마다 감탄했다. 그리고 반년동안 영상을 돌려보다가 결심했다. 휴학하고 뮤지컬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뉴욕으로 가기로.


소개팅을 할 때 만나기 전에 한껏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뉴욕은 아니었다. 그냥 뉴욕이면 됐다. 내가 페이스북이나 지도 앱에 들어가서 현재 내 위치를 찍었을 때 뉴욕이라고 뜨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뉴욕에 오기 전에 대충 생각해 놨던 가보고 싶거나,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을 다 잊었다. 그냥 걷다가, 밴치보이면 앉고, 배고플 때 배를 채우면 됐다. 뉴욕 유경험자였던 내 여행메이트가 하루는 답답해하며 다음 날 하고 싶은 거 없냐고 묻기도 했다. 정말 딱히 없었다. 그저 웃으며 여행메이트가 전에 방문했던 곳이나, 게스트하우스 사람들 일정을 따라다녔다.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했던 말, "평생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가 가장 마음에 와닿던 날들이었다.


위의 사진은 비슷한 마음으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남겨두었던 나의 뉴욕찬가.


그리고 아래 사진은 뉴욕에서 여행메이트한테 가장 감동받은 순간이다. 보스턴에 갔다가 돌아와 시카고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배가 고팠다. 나보다 지리를 더 잘 알고 영어도 더 잘하는 여행메이트가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를 사 오기로 하고 나는 터미널에서 기다렸다. 햄버거를 사 오더니, 나한테 지금 당장 저 문 밖에 나가보라는 거다. 이유를 묻자 답은 해주지 않고 그냥 얼른 나가보라고 했고, 문을 여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좋아했던 화려한 뉴욕이 문 밖에 펼쳐져있었다. 이틀 전,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에 마음껏 누비며 작별인사를 했지만 다시 보게 되니까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 마냥 좋았다. 여행하기 전부터 내가 뉴욕에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그리고 와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가장 잘 아는 친구가 주는 선물 같아 더욱 벅찼다. 풍경도 풍경이었지만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그 친구는 프롤로그에 등장한 이 추억팔이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된 아이디어 제공자다.


뉴욕을 여행하면서 내가 여행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여행하고 있다는 감각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특정 장소나 음식 등 장면보다 그리운 것도 그 감각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감정들이 전부 증폭되고, 내 세계의 경계를 확인하며 그 일부분이 깨지고 확장되기도 하며, 낯선 이의 호의를 쉽게 의심하게 되고, 여러 가지 일들에 더 자주 겁먹고 무서워지기도 하지만 또 쉽게 안도하고 잊을 수 있는 그런 감각말이다.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고, 글로도 남길 수 없어서 더 그립고, 다시 떠나게 하는 걸까? 뉴욕이 참 많은 선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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