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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14. 2024

내 소울 스포츠를 팝니다.(2)

수영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좀 더 큰 수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수영장 윗 층에 매점이 있어서 수영 끝나고 집까지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며 친한 언니와 육개장사발면을 급하게 먹는 그 일상도 행복했지만 그 수영장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당연 시 대회 준비였다. 수영을 배우던 어느 날, 우리 수영장에서 수영 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대표로 몇 명 뽑아서 대회를 내보낼 거라고 하시면서, 수업 중에 한 두 명씩 옆 레인으로 옮기셨다. 그 레인은 바로 수영대회 준비하는 사람들이 따로 연습하는 레인이었다. 나는 내가 당연히 뽑힐 줄 알았는데, 그 레인에 사람들이 꽤 채워질 동안 나는 한 번도 부르지 않으셨다. 조바심이 생겼고, 나는 제발 나도 좀 봐달라는 듯이 최선을 다해서 팔과 다리를 저었다. 꽤 열심히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수영엔 영 재능이 없나 보다 하며 포기하려고 할 때쯤 선생님이 나도 부르셨다.


스타트 다이빙도 연습하고 빠르게 수영하는 법도 연습하고 대회를 나갔다. 얼마간 연습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대회 당일. 가장 늦게 뽑혔어도 1등이 하고 싶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씻고 수영복을 입은 기억이 난다. 스타트대 위에서 내 발을 보면서 긴장을 삭혔던 것도 생생하다. 스타트 소리에 맞춰서 출발. 이기고 싶어서 숨 쉬는 방향이 아닌 왼쪽도 확인하면서 미친 듯이 달렸고, 내가 1등 했다. 사실 어디 가서 이야기하진 않지만 끝까지 정말 간발의 차였다. 내 눈에 양 옆의 사람들이 끝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뿌듯했다. 1등이라니. 승리의 맛을 보고 나서부터 수영에 더 사랑에 빠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유년 시절 수영 대회 출전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문단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첫 번째 문단의 출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여기서 추억을 팔기로 했으니 일부만 편집해서 팔 수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걸릴 수도 있다. 아무튼, 막상 쓰고 나서 보니 누구에게 말 못 할 만큼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나도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도 못 하고 누군가 보고 뽑아주길 기대하며 혼자 애썼던 그 꼬마가 안쓰럽고 귀엽다. 그리고 내 성장에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는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내 의사 표현을 적절한 방법으로 잘 전달해야 건강한 어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지금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초등학생 반으로 옮겼고, 그게 내 어린 시절 마지막 수영 강습이 되었다. 선생님이 지나치게 무서워서 흥미를 잃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배영을 할 때 벌어졌다. 4가지 영법을 다 할 줄 알기에 매일 교정반에 들어갔다. 배영을 해보라고 한 어느 날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다. 배영을 하고 있는 나를 세우고 갑자기 버럭 화를 내시면서 배영을 왜 그렇게 하냐고 하셨다. 심지어 그때는 내가 뭘 못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에서야 내가 그때 롤링을 못해서 혼난 건 줄 알지,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르고 어떤 변명도 못하고 그냥 혼내시기에 혼났다. 심지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제대로 알려주시도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혼나면서 수영을 해야 하는 건가 서러웠다. 선수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그때쯤 되니 선수할 것도 아닌데 영법만 할 줄 알면 됐지 더 교정을 받을 필요성도 못 느꼈다. 두 달 정도 다니고 내 유년시절의 수영 생활은 마무리 됐다.


시간이 흘러 2018년,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다시 수영장의 문을 두드렸다. 몸이 머리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믿고 중급반에 들어가서 열심히 교정을 시작했다. 그 후 2022년 퇴사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수영장 등록이었다. 심지어 내가 무서워서 관뒀던 그 수영장에 어른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 시절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수영장은 여전했다. 그땐 큰 수영장이었는데 이제는 작아 보이는 수영장에서 멋지게 롤링을 뽐내며 배영을 할 때면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지금, 퇴사 후 나를 지켜준 건 수영이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아침마다 집 밖을 나설 수 있게 해 주고, 미소 짓게 해 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다 씻어주고 운동에만 집중하게 해 줬다. 무엇보다 내가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건 자존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 수영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행복할 거라는 기준치도 제공해 줬다. 수영이 너무 좋다. 물속에서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물의 감촉, 노력할수록 교정되는 자세, 땀을 흘리는지 알 수 없는 그 산뜻함, 큰 부상 위험이 없는 재활 성격의 운동이라는 점까지. 나에게 이런 소울 스포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래오래 평생 함께 하고 싶다.  

작년 쯤 친구가 찍은 영상에 수영할 때 찐으로 미소짓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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