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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9. 2024

내 소울스포츠를 팝니다 (1)

수영아, 사랑해

오늘 팔 추억은 나의 소울 스포츠 수영입니다. 소울스포츠를 반드시 찾으십시오. 운동? 안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바야흐로 유치원 시절, 유치원에서 하는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해야 했던 6살, 엄마는 미술 수업을 선택했다. 아직도 미술 수업 시간의 첫날이 생생하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 유치원 미술 수업 교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처럼. 내가 커리큘럼 중간에 투입된 건지, 첫날부터 양반다리 하고 있는 사람을 그려야 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지기 시작했다. 그냥 서 있는 사람만 그려봤지, 너무나 입체적인 그 자세를 종이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3D를 2D로 압축해서 넣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입체적인데 어떻게 납작한 종이에 선으로만 그려 넣으라는 거지? 손을 묶어버리는 물음표 때문에 시도하다가 미술 시간이 끝났다.  


그날 집에 와서 엄마한테 미술 하기 싫다고 수업을 바꿔달라고 했다. 엄마가 그럼 뭐 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이상하게 수영이 배워보고 싶었다. 정말 뜬금없이. 그렇게 수영 인생이 시작되었다. 수영을 배우는 첫날, 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초반에 어색해서 가기 싫지만 그래도 가고 싶어서 설레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여자 선생님이셨고, 엄청 무뚝뚝하셨는데, 그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싫진 않았다.


유치원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던 시절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딱 두 가지다.


수영을 배우던 어느 날, 선생님이 물속으로 동전을 던지셨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몸을 가라앉히는 법도 알아야 된다면서 동전을 다 주워오라고 하셨다. 내 기억으론 나 포함 3명 정도가 강습을 받고 있었는데, 셋 다 가라앉는 법을 몰라 물속에서 얼마나 난리 쳤는지 모른다. 머리로는 몸에 계속 가라앉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계속 난리치고 누워도 보고 별 짓을 다 하다가 드디어 동전을 주웠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표면에서 영법을 하는 것만이 수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해녀처럼 바닥에도 다녀온다. 전복 따듯 동전을 주웠다.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멋을 장착한 기분이었다. 마침내, 내가 물의 지배자가 된 그 기분. 계승한 사람은 없었지만 혼자 치렀던 왕위 계승식의 그날은 절대 잊지 못한다.


두 번째 기억은 평영을 배울 때였다. 평영은 뒤에서 봤을 때 다리를 W로 펼쳐서 개구리처럼 발차기를 해야 한다. 배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 평영을 하겠다는 선생님은 물 위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큰 판을 내려놓고 위에 무릎 꿇고 앉으라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앉았더니 발을 밖으로 빼 M자로 만드셨고, 남은 시간은 그렇게 앉아있으라고 하셨다. 그 자세가 되어야 평영을 할 수 있단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남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체감상 꽤 오래 그렇게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수영인데 물 밖에서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의문도 들고, 아픈 만큼 잘할 수 있는 거러면 버텨야겠다는 투지도 생기고, 물속에 들어가서 물의 촉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세 때문에 뻘쭘하고, 지루했다. 강습 시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수고했다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그 시간을 견뎌낸 건 지금 시점에서 유치원생인 나를 보니까 대견한데, 그때는 그냥 의문투성이었다. 이게 강습이 맞나? 싶은 생각뿐이었다. 반전은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중 지금의 나는 평영을 제일 못한다는 것. 의문이 가득한 사건도 기억에 오래 남는가 보다.

손에 깁스를 해서 물에 못 들어가는데도 발은 담궈야 했던 때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도 못 할 분위기에서 수영을 배웠다. 나는 수영전공생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혼나야 됐다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이 혼났고, 선생님이 무서웠다. 칭찬을 들은 날이 손에 꼽는다. 그래서 더 짜릿했나? 혼날까 봐 매번 수영장 가기 전에 긴장했다. 물론 그 긴장감마저 좋았다. 단단히 사랑에 빠졌던 거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그 방식대로 배우고 싶다. 선생님이 이론만 알려주시고, 나 혼자 감을 터득해야 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무것도 없는 그 백지를 점점 내 방식으로 색칠하고 꾸며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선생님이 무서웠던 덕에 학습을 게을리할 수 없었던 점도 한 몫했다. 특히 혼자 가라앉는 법을 터득했을 때의 그 전율은 앞으로의 수영 인생에서도 만나기 힘든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좀 더 큰 수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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