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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7. 2024

길바닥 추억을 팝니다.

술은 하늘을 지붕 삼아 마셔야 해

늦봄 초여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소위말하는 '노상 까기'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노상은 길거리를 뜻하고, 까다의 앞에는 술이 생략된 말이라고 한다. 길거리는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리 잡고 술 마시면 안 되고, 나는 주로 공원에서 노상을 깠다. 쌀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는 바람, 밤 냄새, 고요함, 간단하고 저렴하지만 가장 완벽한 안주 새우깡과 생생우동, 적당한 취기까지. 이 보다 더 완벽할 수 있나? 어쩐지 태평성대를 살며 고전시가를 줄줄 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진다.


내 첫 노상은 20살 시절, 대학 적응을 못 해서 방황하던 나와 같은 처지였던 친구와 공원에서였다. 술집까지 갈 정도는 아니고, 어른도 되었으니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 와서 마시자며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나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와 이름이 똑 닮은 맥주를 샀는데, 그게 뚜껑이 안 따지는 거다. 어엿한 어른답게 한 모금 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그 청춘은 병맥주 입구를 벤치에 내리쳤다. 친구는 얘가 드디어 미쳤나 보다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더 보란 듯이 한 입 마셨다. 마셨는데 맥주 안에 사탕 같은 것이 있는 거다. 뱉어보니 유리 조각이었다. 그거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내리쳐서 조각난 유리와 뱉은 유리 조각을 비닐에 담고 정리했다. 객기는 맥주병을 깨는 것까지가 한계인 청춘이었다.


학교 잔디밭에서도 과방에서 돗자리를 빌려 많이 놀았다. 학교 내부의 매점에서는 술을 팔지 않아 밖으로 나와 술을 사 와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상은 새내기 시절 수업을 안 들어가고 동기들과 맥주 한 캔씩 마셨던 때다. 의외로 나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모범생 기질이 강한 편인데, 그래서 오히려 더 대학생 때는 자체 공강을 꼭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입학했다. 한 번쯤 일탈을 해봐야 나중에 커서 남들이랑 공감할 추억도 생기고, 해도 되는 때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된다는 인생관도 강했고, 무엇보다 융통성 없는 내 기질을 좀 다듬고 싶었다. 그래서 아예 수업도 안 가고 그 시간에 학교에서 동기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이게 대학생의 낭만이라며 그 기분에 거하게 취했다. 그 누구에게도 자존심이 상해서 말 못 했는데 여기에만 말해보자면, 솔직히 초반에는 마음이 쪼들렸다. 그래도 하길 잘했다. 내 기질을 거슬렀다는 성취감과 대학 청춘이라는 낭만이 남았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서 성수기 때는 잘 안 가지만, 한때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가야 했던 대표적인 노상 장소인 한강도 20대 초반에는 봄마다 갔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앉을 장소 찾는 것도 불편하고, 배달음식도 늘 만족하지 못했는데도 갔다. 남들이 하는 건 나도 꼭 해야 하니까. 여의나루역에 내려서 어떤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내 손에는 엄청난 전단지가 주어진다. 일단 다 받아야 한다. 주로 돗자리를 안 가지고 갔던 터라 내 엉덩이를 땅과 분리해 줄 작고 아늑한 무료 돗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전단지를 보고 전공책보다 더 자세히 메뉴를 상의하고 전화로 주문한 뒤에 돗자리로 사용하면 된다. 더 달라고 말씀드리면 주시는 인심덕에 무료 돗자리 잘 사용했다. 잔디에 앉는 날에는 돗자리를 빌리기도 했지만, 이왕 노상하는 거 없어 보이고 궁상맞아야 더 노상에 감칠맛을 더한달까? 돈 없는 게 낭만인 때 해보자며 오히려 즐겼다. 


여행 중에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지붕이 없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인 나라도 있고, 무섭기도 해서 밤이 되면 숙소로 들어가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가 딱 한 번 페루의 쿠스코에서 했다. 길거리 음식인 안티꾸초(소염통구이)와 길거리 도넛, 맥주를 사서 광장에서 거기서 만난 한국인 언니, 오빠들이랑 길바닥에 앉았다. 꼬치가 식자 냄새도 나고, 밤이라서 엄청 쌀쌀한 데다가 여행 중에 피곤하기도 했어서 다 먹지도 못하고 일찍 마무리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 금빛 야경 속에서 우리끼리 앉아서 한강 분위기를 내보려고 했던 그날 밤이 생생하다. 한국이었다면 광장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있을 텐데 아무도 없어 고요했던 것과 인터넷에 찾아보니 불법은 아니랬는데 외국이라서 혹시 몰라 긴장되는 그 마음과 며칠을 머물렀는데도 낯설고 예쁜 그 금빛 야경. 내내 노상을 외치던 나와 함께해 준 일행들이 있어 더 감사했던 그 밤.


생각해 보면 날이 좋아지면 늘 노상을 깠으니 일상에 가까운 기억인데, 유난히 저 순간들이 추억으로 마음에 남는 이유는 뭘까? 알 수 없는 객기와 함께 했던 날, 일탈도 성실히 했던 날, 마지막이라면서 매해 갔던 한강, 낯선 곳에서 고요한 광장에서 왁자지껄 즐겼던 날. 아마 내 청춘 로망을 전부 실현한 날들이라서, 할 수 있을 때 해보자고 한 걸 다 해본 날들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도 되고, 궁상맞아도 되는 시기였으니까. 국가로부터 더 이상 허락받을 것이 없는 30대 초반은 이름과 설명이 없는 시기다. 이제 이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거나 용인되는 행동이 없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훨씬 자유로워졌는데 마음 한편이 퍼석하다. 이제 나이에 붙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나만의 로망을 만들고 실현하면서 살아야 일상 같은 순간들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다. 추억을 팔면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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